살아가는 이야기

(펌)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 마을, 부산 금정구 금성동

깜보입니다 2009. 10. 28. 15:21

[소읍기행]500년 전통의 산성막걸리 마을, 부산 금정구 금성동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na.co.kr 
 
민속주 1호로 지정된 산성막걸리는 500~600년 동안 한 마을에서 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온 전통주다. 여전히 손으로 빚는 누룩 제조 공법은 산성막걸리를 지켜온 비법이다.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백화점 주류매장에서는 월별 막걸리 매출이 수입맥주 판매량을 앞질렀다. 막걸리의 인기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유산균이 많아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은 막걸리가 농민의 땀과 갈증을 덜어주는 ‘농주(農酒)’에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민주(民酒)’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몫 하고 있다. 그중 산성막걸리는 500년 넘도록 누룩을 발효시키는 전통 제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200여 민속·토속주 가운데 1979년 ‘민속주 1호’로 등록된 술이기도 하다.

깊은 산 속 막걸리, 500년 세월을 뛰어넘은 맛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산성마을은 500년 이상 전통방식으로 누룩을 빚어 왔다. (이다일기자)


부산 금정산 해발 450m.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수려한 산세를 뒤로 하고 한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부산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 왜구가 침략해 올 것을 대비해 조선 숙종 32년(1706년) 금정산에 쌓은 동래산성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됐다. 지금은 ‘산성막걸리’와 ‘염소불고기’를 주메뉴로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 관광마을이 됐지만 예전만 해도 시내까지 2~3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산골이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빚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누룩이 마을에 등장한 것은 조선 초 금정산 자락 화전민들이 생계 수단으로 빚기 시작한 때부터다. 범어사 승려도 누룩을 빚어 생계를 꾸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을 주민은 농사 대신 술을 빚어 생계를 이어 왔다. 산성막걸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동래산성을 축성하던 즈음이다. 산성을 쌓기 위해 각 지역에서 온 인부들은 이곳에서 먹어 본 막걸리에 반해 고향에 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산성막걸리’를 찾는 손길이 많아진 이유다.

동래산성 막걸리가 민속주 1호가 되기까지

산성마을 누룩방에서 피자크기 만한 누룩이 발효되고 있다. (이다일기자)


전통 누룩 특유의 새콤하고 구수한 맛은 일제 강점기에도 그 명성이 이어졌다.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빚는 양에 따라 동래를 비롯해 경남 일대 쌀값이 오르고 내릴 정도였다. 산성에 살던 학생들은 책가방에 누룩을 넣고 다니며 동래에 내다팔아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산성막걸리가 유명세를 타다보니 마을 주민들은 애써 만든 누룩을 도둑맞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했다. 8대째 마을에서 누룩을 빚고 있는 전남서(78)할머니는 “시집와보니 마을 전체가 누룩 빚고 술 담갔지. 처음에 시누이고, 올케한테 누룩 빚는 거 배우느라 진땀 많이 뺐어”라고 옛 모습을 회상한다.

1960년 주세법으로 누룩 제조를 금지한 이후 산성막걸리는 마을 사람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 갔다. 5.16 군사쿠데타 전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를 즐겨 찾았다. 79년 부산에 순시 차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로 ‘산성막걸리’를 살리기 위해 민속주 1호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마을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로 우리마을 누룩을 훔쳐가는 사람도 없고, 가짜를 가져와서 산성막걸리라 하지도 않더라고요. 오로지 우리 마을에서만 민속주 1호가 나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대대로 이어온 누룩방, 산성막걸리의 힘

산성막걸리 산증인 산골에 위치한 산성마을은 예로부터 농사 대신 술 빚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마을 경로당에서는 (왼쪽부터) 임명자(85), 전남서(78), 이복녀(76), 오명자(69)할머니가 마늘을 까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시집오니까 온통 마을이 막걸리를 빚고 있었지. 그 때 누룩 빚는 거 배워서 요즘에도 매일 아침 누룩을 빚고 있어. 그거 다 옛날 누룩방에서 그대로 발효시키고”라며 8대째 막걸리를 빚고 있는 전남서 할머니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다일기자)


산성막걸리는 민속주 제1호로 제조 판매 허가를 받을 당시 주민 288명이 참여해, (주)금정산성 토산주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마을 사람이 하나둘씩 떠나고 10여 년 전부터 유청길씨(47)가 대표를 맡아 회사를 꾸리고 있다. 유씨는 “우리 막걸리의 비법은 누룩입니다. 몇 대 째 이어진 누룩방을 보면 깜짝 놀라실 걸요”라며 누룩방으로 안내한다. 1년 365일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유지된 누룩방은 오랜 세월을 머금은 만큼 묘한 힘이 있는 듯 했다. “금정산 맑은 물에 밀을 씻어 이렇게 큰 피자 모양의 누룩을 만들죠. 누룩방에서 최소 보름 정도를 발효, 건조시킨 뒤 고두밥과 버무려 다시 발효시킵니다. 하루만 지나도 술이 끓기 시작하지만 1주일 가량 더 발효를 거치면 첫맛은 새큼하고 끝맛은 구수한 막걸리가 나옵니다”라고 전통 제조 방식을 설명한다.

현재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에는 600여 가구 1400명의 주민이 산다. 누룩을 빚던 어르신들은 대부분 세상을 뜨고 마을에서는 5~6명이 직접 옛 방식으로 누룩을 빚는다. 하지만 몇백년 동안 누룩방에 누룩을 비운 적이 없듯이 마을 식당들은 하나같이 산성막걸리를 내놓는다. 15년 전부터는 막걸리에 곁들이는 ‘염소 불고기’까지 마을의 대표 자랑거리가 됐다. 마을사람들은 “산성막걸리를 맛보러 오는 일본 손님도 끊이질 않아요. 요 근래에는 대기업에서 누룩방을 보고는 상품화하고 싶다고 난리인 걸요”라며 막걸리 인기에 대해 늘어놓는다. 유청길대표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이렇게 산골에 사는 게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수려한 산세에 몇백년을 내려온 누룩까지. 막걸 리 역사가 곧 마을의 미래를 이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na.co.kr〉

가는길/
부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온천장역에서 내린다. 다시 203번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 새마을금고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산성마을에 위치한 식당 어느 곳에서나 산성막걸리를 맛 볼 수 있다.

금정산성 토속주(산성막걸리) http://www.gumjung.co.kr/ 051-517-6552


산성막걸리 양조장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새마을금고 바로 앞에 (주)금정산성 토속주 양조장이 있다. 평일에도 금정산을 오르는 등산객으로 북적이는 마을 한 가운데에 양조장이 있는 셈이다. 이 양조장을 중심으로 마을 안 모든 식당에서 산성막걸리를 내놓는다. 매일 생산되는 막걸리는 바로 마을 식당에 공급되거나 전국 각지에서 주문을 받아 운반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양조장을 보면 산성막걸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이다일기자)


“누룩방이 산성막걸리의 비법” 금정산성 토속주(산성막걸리) 유청길대표가 마을 구석에 위치한 누룩방으로 안내했다. 언뜻 보기에도 몇십년이 되어 보이는 허름한 건물 안쪽에 보물창고처럼 누룩방이 자리하고 있다. 유대표는 “전국 어디를 가도 이렇게 전통 그대로 누룩방에서 누룩을 발효시키는 곳은 없다고 해요. 바로 이 누룩방이 우리 산성막걸리의 비법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이다일기자)


피자크기만한 누룩 옛날에는 집집마다 직접 누룩을 빚어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산성막걸리는 누룩을 빚어놓으면 훔쳐가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성마을에도 누룩 빚던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5~6명 정도만 매일 전통방식으로 누룩을 빚는다. 그래도 산성마을 누룩방에는 누룩이 떨어진 적이 없다. 아니, 500년 이상 산성마을에서 누룩 빚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이다일기자)


그냥 먹어도 맛있는 고두밥 발효와 건조를 끝낸 누룩은 미리 지어놓은 고두밥과 버무려 다시 발효시킨다. 유청길대표는 고두밥을 한 움큼 집어 먹으며 “어렸을 적에는 이 고두밥이 어찌나 고소하던 지요. 부모님 몰래 훔쳐 먹다가 혼난 게 한두번이 아녜요"라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는 산길을 2~3시간 걸어 나가야 하니 산골에 사는 것을 고수하는 부모님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이 금정산 자락이 아니었으면 막걸리를 지켜내지 못했겠죠”라고 덧붙인다. (이다일기자)


끓고 있는 술 고두밥과 버무려 발효시킨 누룩은 하루만 지나도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때도 술맛이 나긴 하지만 1주일가량 더 발효시키면 뽀얀 색을 점차 드러내게 된다. 뜰채에 걸러내고 나면 첫맛은 새큼하고 끝맛은 구수한 산성막걸리가 완성된다.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이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게 된다고 한다.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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