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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영건의궤, 조선 건축의 뼈와 살에 관한 보고서

깜보입니다 2010. 12. 27. 09:31
ㆍ목수 이름·품삯·사용 목재 등 건축 과정의 모든 것 담아
ㆍ17세기 이후 가장 구체적 기록

“과거 건물들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지었는지 지금 잘 알 수 없는데, 영건의궤(營建儀軌)들을 통해 조선시대 건축에 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됐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들이다.”

건축학자인 김동욱 경기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영건의궤>(동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를 중심으로 2003년 조직된 영건의궤연구회는 조선시대 의궤 중에서도 영건의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로, 이번에 공동연구의 성과물로 조선시대 왕실에서 지은 각종 건축물의 공사 내용을 기록한 건축공사 보고서를 모아 분석한 <영건의궤>를 내놓았다.

 

<인정전영건도감의궤>에 표현된 인정전과 현재의 인정전(사진 오른쪽) 입면 비교. 그림에는 툇간 하부에 벽돌을 쌓았으나 현재의 인정전은 머름으로 처리되었다. 머름은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말한다.

 


의궤는 ‘의례의 궤범’, 즉 어떤 행사를 치를 때 의례의 규칙이나 규범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해 의궤라는 이름의 책자로 남겼다. 국내외를 합쳐 지금까지 700종이 넘는 의궤서가 전해지는데 이들은 2008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의궤 중에서 건축공사와 관련된 것을 영건의궤라 부른다. 영건은 전통왕조시대 궁궐이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 건축행위를 뜻한다. 현재 전하는 영건의궤는 32종. 궁궐과 관련한 것이 14종, 왕실 사묘를 다룬 것이 16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능의 정자각을 다룬 것이 1종, 축성공사를 다룬 것이 1종이다.

건축 관련 의궤는 조선시대 건축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궁궐을 지은 목수가 누구이며 하루에 받은 일당은 얼마인지, 목재는 어디서 구했으며 어떤 경로로 공사 현장까지 조달했는지, 단청 안료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집을 짓고 상량식을 할 때 어떤 절차에 따랐으며, 처음 집을 설계할 때 누가 의사결정을 이끌어냈는지 등을 세세히 적고 있다. 건축그림도 있어서 옛사람들의 건축표현 방식을 알 수 있고 서까래, 쇠서 등 목수들이 사용하던 건축용어들도 찾아낼 수 있다.

이 때문에 건축 관련 의궤는 조선시대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건축그림은 당시 건물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과 같다. 건축공사와 관련해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에 없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건축사 연구에서 의궤가 차지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영건의궤는 “17세기 이후 건축공사에 관한 기록물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영건의궤연구회는 말한다.

<화성성역의궤>, 서울대 규장각 소장

책은 영건의궤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등을 담은 개관, 영건의궤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공사 과정의 제반 일들, 의궤를 통해 알 수 있는 궁궐·사묘·성곽의 특징, 의궤에 나오는 건축그림 분석, 용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 실린 많은 건축그림은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영건의궤에 실린 것을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다. 책에서는 특히 건축용어 연구에 중점을 뒀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기록에는 남아 있는 용어, 기록에 나와 있는 용어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차이점 등을 분석했다.

영건의궤는 그동안 깊숙이 묻혀 있었다. 규장각과 장서각에 주로 소장되어 있는데, 특히 강화사고에 있던 것은 약탈돼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가 있는 탓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모든 문서가 한자로 돼 있고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뜻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자료가 공개되고 일부는 전산화까지 되면서 이용이 다소 쉬워졌다. 김동욱 교수는 “규장각과 장서각에 있는 의궤는 절반 정도가 전산화돼 있어서 원문 이미지를 볼 수 있고, 전산화가 안된 나머지 절반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돼 있는 것을 출력해 볼 수 있다”며 “원본이 파리에 있는 의궤들은 마이크로필름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다”고 설명했다.


 


의궤는 ‘의례의 궤범’, 즉 어떤 행사를 치를 때 의례의 규칙이나 규범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해 의궤라는 이름의 책자로 남겼다. 국내외를 합쳐 지금까지 700종이 넘는 의궤서가 전해지는데 이들은 2008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의궤 중에서 건축공사와 관련된 것을 영건의궤라 부른다. 영건은 전통왕조시대 궁궐이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 건축행위를 뜻한다. 현재 전하는 영건의궤는 32종. 궁궐과 관련한 것이 14종, 왕실 사묘를 다룬 것이 16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능의 정자각을 다룬 것이 1종, 축성공사를 다룬 것이 1종이다.

건축 관련 의궤는 조선시대 건축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궁궐을 지은 목수가 누구이며 하루에 받은 일당은 얼마인지, 목재는 어디서 구했으며 어떤 경로로 공사 현장까지 조달했는지, 단청 안료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집을 짓고 상량식을 할 때 어떤 절차에 따랐으며, 처음 집을 설계할 때 누가 의사결정을 이끌어냈는지 등을 세세히 적고 있다. 건축그림도 있어서 옛사람들의 건축표현 방식을 알 수 있고 서까래, 쇠서 등 목수들이 사용하던 건축용어들도 찾아낼 수 있다.

이 때문에 건축 관련 의궤는 조선시대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건축그림은 당시 건물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과 같다. 건축공사와 관련해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에 없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건축사 연구에서 의궤가 차지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영건의궤는 “17세기 이후 건축공사에 관한 기록물 가운데 가장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영건의궤연구회는 말한다.

<화성성역의궤>, 서울대 규장각 소장

책은 영건의궤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 등을 담은 개관, 영건의궤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공사 과정의 제반 일들, 의궤를 통해 알 수 있는 궁궐·사묘·성곽의 특징, 의궤에 나오는 건축그림 분석, 용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 실린 많은 건축그림은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영건의궤에 실린 것을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다. 책에서는 특히 건축용어 연구에 중점을 뒀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기록에는 남아 있는 용어, 기록에 나와 있는 용어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차이점 등을 분석했다.

영건의궤는 그동안 깊숙이 묻혀 있었다. 규장각과 장서각에 주로 소장되어 있는데, 특히 강화사고에 있던 것은 약탈돼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가 있는 탓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모든 문서가 한자로 돼 있고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뜻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자료가 공개되고 일부는 전산화까지 되면서 이용이 다소 쉬워졌다. 김동욱 교수는 “규장각과 장서각에 있는 의궤는 절반 정도가 전산화돼 있어서 원문 이미지를 볼 수 있고, 전산화가 안된 나머지 절반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돼 있는 것을 출력해 볼 수 있다”며 “원본이 파리에 있는 의궤들은 마이크로필름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