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유럽의 신사 나라 영국에선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윌리엄 영국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식이 진행된 것입니다. 전 세계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이후 30년 만에 맞은 경사에 이목을 집중했습니다. 2001년 대학 동기로 만나 10년 동안 사랑을 키워온 왕자와 중산층 출신 평민 여성의 결혼식으로 더욱 화제가 된 이날 결혼식은 지구촌 약 20억 인구가 지켜봤다고 합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절대 권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일반 국민과 다른 엄격한 예법으로 왕실의 규율을 지켜 오고 있는 왕실에 대한 존경과 궁금증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일반 국민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더욱 궁금한 왕실의 생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현재 왕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속에는 분명 혈통을 중시한 왕실이 이어져 왔습니다. 일반 백성과는 다른 과거 우리나라 왕실 생활, 어땠을까요?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장서각소장 국학자료(http://yoksa.aks.ac.kr)의 도움을 받아 조선시대 그 엄격했던 왕실의 생활을 살펴보겠습니다.
>> 왕비의 간택
왕의 아내, 왕비는 왕과 결혼함으로써 왕실의 일원이 됩니다. 왕비가 되는 과정은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세자빈으로 간택됐다가 시아버지인 왕이 죽고 남편인 세자가 왕을 이어받으면서 왕비가 되는 경우, 간택령을 통해 일반 사가에서 왕비가 간택되는 경우, 후궁으로 있다가 중전이 사망하면서 후궁 중에서 왕비가 되는 경우, 반정이나 왕의 뒤를 이을 계승자가 없어 왕실의 친척이었던 남편이 왕이 되면서 왕비가 되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왕비나 세자빈 등을 간택할 때는 왕실에서 금혼령을 내려 혼기가 찬 처녀들의 결혼을 금합니다. 그리고 사대부가를 대상으로 자신의 집에 처녀가 있고 나이는 몇 살인지 등의 내용을 담은 처녀단자를 들입니다. 이렇게 처녀단자를 받으면 이제부터 서바이벌과 같은 경선이 펼쳐집니다.
▶ 광서8년 왕세자 가례도감 의궤 반차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
이들 처녀들은 세 번에 걸쳐서 심사를 받는데 이를 삼간택이라 합니다. 총 3차의 경선을 거치면 마지막으로 3명의 후보가 남습니다. 이들 중 마지막 심사를 거쳐 최종 간택을 받은 사람이 세자빈 또는 왕비가 되는 것입니다. 간택이 되면 혼인하는 날까지 왕궁 부근의 별궁에서 왕실예법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결혼 생활
일단 결혼을 하면 왕비의 의무와 역할은 매우 커집니다. 우선 왕비는 왕실 내부의 일, 즉 내명부를 거느리고 윗전을 잘 모셔야 하며, 백성들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모범적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왕실의 행사를 주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무는 왕의 아들을 낳아 후사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사대부가에서는 남편과 부인이 각각 다른 곳에서 기거하도록 하고 집안 어른들이 길한 날을 잡아 합방날짜를 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 역시 길한 날을 잡아 합방을 했습니다. 주로 뱀날, 호랑이날, 초하루, 그믐, 보름을 피해 한 달에 하루를 길일로 택했습니다. 특히 왕과 왕비의 침전 주위에는 삼면이 방으로 돼 있어 나이 많은 상궁이 이곳을 밤새 지켰다고 합니다.
>> 왕실의 자녀 기원
왕비의 왕자 생산은 왕비가 가지는 가장 큰 의무이자 책임인 동시에 어쩌면 사활의 문제이기까지 했습니다. 왕자를 낳아 세자책봉을 받아야 비로소 온갖 권력다툼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궁궐에는 수많은 후궁이 있고, 이들이 낳은 자식들도 있을 터인데 왕비가 왕자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왕의 자리를 둘러싼 권력다툼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상황만 하더라도 만약 인현왕후가 아들을 낳았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렇듯 왕실에서 아들을 낳아 혈통을 잇고 왕위를 계승케 하는 것은 하나의 숙명이었습니다. 때문에 왕실의 자녀에 대한 기원은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혼례는 남녀 간의 결합을 통해 조상의 대를 이어 가계를 계승할 후손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때문에 혼례식에서도 자연스럽게 다산을 기원하거나 아들을 기원하는 상징이 나타났습니다.
우선 왕실 혼례에서 집사관을 맡는 정사와 부사는 반드시 부부가 해로하고 아들이 많은 ‘복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다복한 사람이 혼례를 주관함으로써 그가 누린 복이 왕과 왕비의 생애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을 담은 것입니다.
신혼방에는 자녀 출산을 기원하는 특별한 그림을 배치했습니다. 19세기 자료를 보면 혼례식에 특별히 제작된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가 담긴 병풍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8남 7녀를 둔 중국 당대의 역사적 인물, 곽자의(697~781)장군의 영화롭고 다복한 생애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왕과 왕비의 신혼방인 침전공간에는 ‘구추봉도(九皺鳳圖)’를 뒀습니다. 봉황암수 한 쌍과 아홉 마리의 새끼 봉황, 해와 달 등이 표현돼 있어 다산과 부부화합, 태평상대를 이루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함축된 것입니다.
▶ 곽분양행락도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바로가기 |
>> 왕실의 태교와 출산
이런 염원 속에 왕비가 임신을 하면 자녀교육은 태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왕은 밤 생활을 근신하고 태아 정서를 위해 임신 중엔 궁궐에서 매를 때리는 형벌을 중단했습니다.
왕비는 태아의 건강과 좋은 기질 형성을 위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태교를 시작합니다. 성현의 교훈을 새긴 옥판을 보고 그 말씀을 외우고 임신 3개월째부터는 거처를 별궁으로 옮겨 본격적인 태교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환경을 중시해 몸치장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동백기름, 물, 계란 등으로 머리와 피부를 가꾸고 얼굴을 씻을 때는 팥과 녹두, 콩으로 가루로 만들어 비누 대신 사용했습니다. 단 것을 피하고 항상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를 듣기도 했습니다.
임신 5개월째부터는 낮에는 당직 내시, 밤에는 상궁, 나인이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낭독하게 해 자연스럽게 태아가 듣도록 했습니다. 임신 7개월째부터는 고기반찬을 피하고 아침 직전에 순두부를 먹었습니다. 콩 음식이 태아 두뇌발달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용봉탕과 임금의 물고기라 일컫는 잉어 역시 왕자 생산을 위한 영양식으로 활용했으며 왕비 처소에는 십장생도 병풍을 치고 그것을 보면서 왕비가 직접 누비옷을 바느질하며 왕자 탄생을 기원했습니다.
출산예정 3개월 전에는 산실청이 꾸려지는데 이는 왕비의 출산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후궁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출산예정 약 1개월 전에 호산청을 설치했습니다. 출산 이후에는 길일을 택해 목욕과 태를 씻는 의식을 했고, 출산 7일 후에는 권초례라 해서 출산 후 행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또 왕자가 출생했을 때는 태를 보관할 장소를 선정하고 태를 봉안하는 태실을 만들어 이장하는 ‘안태’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는 왕실의 독특한 출생의례입니다. 태를 항아리나 돌 항아리에 담아 명산에 묻는 것입니다.
▶ 태실 출처 : e뮤지엄 ☞ 바로가기 |
>> 왕실의 왕세자 교육
조선 왕실에서 왕위 계승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때 교육은 교과서적 공부에 국한하지 않고 규범과 의례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을 중시하는 등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는 전인교육의 형태를 띱니다. 안으로는 덕성을 갖추고 밖으로는 덕행을 실천하는, 덕이 있는 군주로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우선 왕자가 태어나면 교육을 담당하는 ‘보양청’을 설치합니다. 원자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특히 3세 이전에 인격이 형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정서교육을 실시했습니다. 1세 미만 왕자에게 실시된 두뇌발달 운동은 손놀림 운동으로는 왕자의 옆구리를 잡고 어른이 좌우로 흔들어 움직이는 ‘부라부라 불불’, 머리를 좌우로 돌리고 양손을 마주치는 ‘도리도리 짝짝꿍’, 영아를 깜짝 웃게 하는 ‘까꿍’, 한 손으로 맞은편 손바닥 중앙 부위를 찌르는 ‘곤지곤지 잼잼’ 등이 있었습니다.
왕세자가 4~6세가 되면 ‘강학청’에서 본격적인 한자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늘 붓과 먹, 책을 가지고 놀게 했으며 효자들의 행동을 묘사한 그림이나 공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5세가 되면 ‘천자문’, ‘소학’, ‘격몽요결’ 등으로 한자습득과 유교교육을 했는데 언문과 체조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이때 활용한 수련법으로는 두뇌를 발달시키는 ‘인두수련법’, 팔다리를 강화해 신체를 단련하는 ‘사신수련법’, 정신집중을 위한 호흡법으로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한 ‘지식법’ 등이 있었습니다.
잘 배우고 있는지 검증하는 시험제도도 있었습니다.
고강이란 것으로 과거 응시자들이 보는 구술시험과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정기시험을 말합니다. 왕세자 역시 세자시강원에서 5일에 한번 고강을 치렀는데 이때 성적은 장부에 기록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법강이나 회강, 수업 시작 때마다 지난 번 배운 것을 확인하는 시험을 수시로 진행했습니다. 형태는 어떤 주제를 정한 후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논리적 토의를 통해 두뇌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왕세자 출궁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
이렇게 과중한 공부에 시달리는 왕세자를 위해 먹을거리는 두뇌발달에 좋은 음식들을 제공했습니다. 우선 원지, 창포, 복령, 산조인, 용골, 모려, 용안육, 구기자, 호두, 우황 등을 주재료로 하는 총명탕과 죽순죽, 국화죽 등 약죽을 수시로 먹도록 했습니다. 죽순은 머리를 맑게 하고, 기를 강화하는 작용이 뛰어나고 국화죽은 뇌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콩류 역시 두뇌를 총명하게 하는 음식재료로서 즐겨 사용했는데 왕실에서는 왕세자에게 검은콩을 비롯한 콩류와 검은 참깨 등이 들어간 음식 등 두뇌 발달에 좋은 음식만 주로 먹도록 했습니다.
▶ 한국의 왕과 왕세자(고종과 순종) 출처 : 한국 서양고서DB ☞ 바로가기 |
왕도정치의 중심체인 군주는 이렇듯 어릴 때부터, 아니 태내에 있을 때부터 유덕한 군주가 되기 위한 문자교육, 경전교육, 의례교육 등 이상적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습니다. 군주의 덕에 따라 백성들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실의 생활, 특히 한 나라의 군주가 돼야하는 왕세자와 왕의 길은 결코 편하지도, 쉽지도 않은 길이었습니다.
※ 참고사이트·문헌
조선왕실의 왕세자 교육과 그 특징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선왕실의 출산문화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백과사전
>국가지식포털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이 땅에 '恨'으로 가득찬 적군묘지 (0) | 2011.06.24 |
---|---|
[스크랩] 여름에 피는 꽃 (0) | 2011.05.31 |
[스크랩] 농민이 아니면 땅을 가지지 말라 (0) | 2011.02.19 |
[스크랩] 우리 동네 지켜주는 전설의 상록수가 있다고? (0) | 2011.02.08 |
[스크랩]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은 어디인가 (0) | 201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