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장식 일월오악도
궁궐 정전의 당가(唐家) 장엄용(莊嚴用) 그림을 대개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라 부른다. 이 그림은 정전뿐만 아니라, 왕이 임석하는 흉례(凶禮), 길례(吉禮), 또는 관경(觀耕) 등 궁중 의식에 사용되었고, 선대왕들의 초상과 신주를 모시는 선원전에도 설치되었다.
읠월오악도는 해와 달, 5개의 산, 파도치는 바다, 흘러내리는 물줄기, 그리고 적송을 완벽한 좌우대칭 구도 속에 용해시킨 지극히 도식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일월오악도 처럼 동양 전통의 회화적 상징체계를 통해 우주자연의 이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낸 그림도 드물다.
일월, 그리고 일월경
지금은 일월오악도에 해와 달이 그려진 것을 당연시 하지만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오악병에는 해와 달이 그려지지 않았다.
현종 원년에 제작된 [효종빈전도감의궤]를 보면 오봉병풍을 제작하되 오채로 오봉산, 적송, 수파(水波)를 기린다고만 되어 있을 뿐 해와 달에 관한 언급은 없다.
숙종 대의 의궤에서도 그냥 오봉병이라는 명칭으로만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의전용 병풍 그림의 화의가 오봉산에 집중돼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예를 보여주는 <오악도벽장문>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하고 있어 당시의 오봉도의 사정을 짐작케한다.
의궤 내용을 살펴보면 일월경(日月鏡)을 두 자 길이 정도의 철사로 당가 천장에 매달고 화면 위를 스쳐 내려오게 하여 일월을 대신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일월경과 오악도를 따로 제작하여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의전용 오악병을 제작했던 것이다. 영조의 대상(大喪) 이후로 일월경 사용이 중지되면서 금은니(金銀泥)로써 해와 달은 화면에 직접 그려 넣는 방법이 채택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는 현재의 일월오악병처럼 해와 달을 붉은 색과 흰색(노랑)으로 그리는 방식이 정착되었다.
가형(假形)으로 진상(眞象)을 뽑아내다.
일월오악도에 그려진 모든 내용들을 얼른 보면 자연을 재현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면 속의 자연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어떤 근원적 진상을 드러내기 위한 가형으로 존재한다.
해와 달, 오악, 파도, 물결 유수(流水), 적송(赤松) 등은 그것이 무엇을 대신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상징형이며,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정통 관념 산수화에서 산과 물과 나무가 도(道)라고 불리는 우주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려진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대개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물(物)로서 사물을 보지않고 상(象)으로 사물을 본다.
또한 상으로 상을 보지 않고 이치로 상을 본다.
상으로 사물을 보면 지극한 상 아닌 것이 없고, 이치로 상을 보면 지극한 이치 아닌 상이 없다.”
[농암집(農巖集), 삼일정기(三一亭記)]
이것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 號:農巖)의 말이다.
이처럼 상으로 사물을 보고, 이치로 상을 보려는 태도는 김창협뿐만 아니라, 유교 철학과 성리학을 숭상했던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일월오악도를 직접 그린 사람은 물론 화원들이다.
그러나 그림의 됨됨이는 화원의 자질도 문제가 되지만 감상층의 수준과 요구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일월오악도에는 화원이 아니라 그림 제작에 관여했던 왕과 그를 둘러싼 문인 관료들의 정신세계와 예술 의욕이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물의 태도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자연을 경치로만 보는 것이고,
2)흥취와 교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며,
3)이치가 함축된 상(象)으로 보는 것이다.
일월오악도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도형의 집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상징형으로 탈바꿈해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보다 크고 깊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의 삽자가나 불교의 ‘만(卍)’ 문양이 지극히 단순한 형태지만 그 뜻하는 바는 깊고 오묘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우리가 일월오악도의 본래 면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상(象)을 바르게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상(象)이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꿈처럼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그래서 추상적인 내용을 누가 봐도 똑같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객관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동양철학에서는 수를 사용해서 보이지 않는 이치를 증명하는 방법을 창안해 냈는데, 그것이 상수(象數)다.
일월오악도의 일월에는 2, 오악에는 5의 상수가 적용돼 있다. 이들 상수의 의미를 제대로 읽으면 그림에 감추어진 은밀한 상징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주의 상징, 해와 달
해와 달은 서양 천문학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별 개의 천체다.
그러나 동양 옛 사람들은 일월을 통합된 하나의 상으로 인식했다.
일찍이 맹자는 “일월은 밝음의 덩어리라, 빛을 받아드릴 만한 곳은 반드시 모두 비춰준다”고 했다. 일월이 ‘밝음’과 ‘편조(遍照)’의 상징형으로 통합된 예이다.
“(전하의) 道는 음양을 갖추시고 밝음은 일월과 부합하십니다.”
“전하께서는 일월의 지극히 밝음을 돌리시고.....”
“천자는 사사로운 어짊이 없고, 일월은 사사로운 비침이 없으며, 성인은 사사로운 은혜가 없으니......”
라고 하는 등의 조선 문신들의 임금을 향한 칭송의 글에서도 ‘밝음’과 ‘편조’의 상으로 통합된 일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월은 밝음과 편조의 상으로 여겨짐과 동시에 음양의 대표적 상징으로 옛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월오악도를 보면 해는 화면 왼쪽에, 달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배치 방법은 동양 전통의 방위관념과 일치한다. 전통 방위관념에서 방위의 중심은 자오선 상의 남향한 위치로 설정돼 있다.
이 기준을 따르면 화면 왼쪽(향해서 오른쪽)이 東과 陽, 오른쪽이 西와 陰이 된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쪽으로 지므로 ‘左-東-陽-日’, ‘右-西-陰-月’의 공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일월오악도의 해와 달은 음양의 상징형으로 그려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해를 붉은 색, 달을 흰색으로(드물게는 노랗게) 채색한 것 또한 일월을 음양의 상으로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를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은 해의 양기가 극할 때가 정오이고, 정오는 오행상으로 화(火)에 해당며, 오행색으로는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이 흰색인 것은 달의 음기가 극할 때가 서쪽으로 질 때고, 서쪽은 오행상으로 금(金)에 해당하며, 오행색으로는 흰색이기 때문이다.
일월오악도에서 보듯이 해와 달이 뜬 하늘을 호천(昊天)이라고 한다.
음양은 태극에서 분화되어 나왔고, 해와 달은 음양의 상징이므로 해와 달을 분화해 낸 하늘은 곧 태극과 같다.
밝고 광대한 호천에 일월이 운행하면 음양의 작용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만물이 생성 변화한다. 구름, 비, 눈이 모두가 음양의 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그 혜택을 받은 지상의 모든 것이 그의 이치에 따라 생사윤회(生死輪廻)한다. 나고 또 나서 그치지 않는[生生不窮] 음양의 조화를 신(神)이라고 할 때 그와 같은 의미의 신은 곧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붉은 해와 흰 달이 뜬 일월오악도의 짙푸른 호천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음양의 이치가 함축된 태극의 상(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땅의 상징, 오악(五嶽)
오악은 중앙의 산과 그 산을 동서남북에 둘러싼 네 산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중앙의 숭산(崇山), 동방의 태산(泰山), 남방의 형산(衡山), 서방의 화산(華山), 북방의 항산(恒山)을 오악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조선시대의 예를 보면 중앙에 북한산(北漢山), 동의 금강산(金剛山), 남의 지리산(智異山), 서의 묘향산(妙香山), 북의 백두산(白頭山)이 오악으로 설정돼 있었다.
일월오악도의 오악은 이 같은 지리상의 특정한 산을 그린 것이 아니다. 혹자는 이 산을 곤륜산이라고 주장하나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이다. 곤륜산으로 말하면 중국 신강, 서장에 걸쳐 있는 실재하는 산이자 중국 고대 신화와 연결된 일종의 신산(神山)으로 여겨진 산이다.
또한 신화 속에서는 곤륜산을 삼구(三丘)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감안할 때 5개의 산이 조합된 일월오악도의 산을 곤륜산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옛 사람들은 천지를 다른 말로 ‘광악(光嶽)’이라고 했다.
하늘을 ‘광’이라고 한 것은 빛나는 삼광(三光:해 달 별)이 있기 때문이고,
땅을 ‘악’이라 한 것은 오악(五嶽)이 있기 때문이다.
일월오악도의 오악은 일월이 빛나는 호천과 대대(待對)관계를 이루는 땅의 대표적 상징이다.
오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5의 수가 적용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 5의 수는 순서의 전후나 양의 대소를 재는 수치가 아닌 상을 표시하는 수, 즉 상수(象數)이다. 상수학에서 5는 중(中)을 의미한다. 중이란 상하, 남북의 대극선이 통과하는 그 일점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중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중점은 전체를 지지(支持)하고 있으니 중심이 되고, 중심이 자리한 중앙이 된다. 따라서 5의 수가 적용된 오악은 하늘과 대대관계를 이루는 땅의 대표적 상징이자 중앙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중악에 포괄된 사악(四嶽)
일월오악도에서 5개의 산은 단순히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산들이 아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1)중앙의 산이 가장 크고, 그 주변의 산들은 이보다 작으며,
2)주변의 작은 산들이 중앙의 큰 산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2)각 산들이 그 앞의 산에 의해 약간씩 가려진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일월오악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모든 산이 중악에 포용되고, 중악으로부터 모든 산이 분화되어 나오는 형국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악은 모든 산의 근원이고, 모든 산은 중악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은 공히 태극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성리학적 우주관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유수(流水), 그리고 파수(波水)와 낭수
일월오악도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두 줄기 유수(폭포)와 일렁이는 파수(바다)다.
아래로 곧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복잡한 준법 사용으로 다소 산만해진 화면을 단번에 정리해 준다. 일월오악도의 파수와 유수는 오악이 그렇듯이 단순히 산수 점경을 그린 것이 아니다.
현존 일월오악도나 의궤에 실린 그림을 보면 모든 낭수(물거품)가 화면 중심의 중악을 향해 모여드는 형국을 표현한 것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그림2>는 낭수가 중악을 향해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림3>은 유수를 향해 모여드는 낭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낭수가 중악과 산간 유수를 향해 집중되는 형태로 표현한 것은 바다가 산에 포용되는 형세를 표현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장현광(張顯光1554-1637 號:旅軒)은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그 크기와 깊이를 말하면 측량하기 어렵고, 그 풍부함을 말하면 다 할 수 없으며, 유구함을 말하면 만고에 변함이 없다. 바다는 크고 깊은 까닭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넓고도 두터운 땅에 의해 거두어지니 땅은 참으로 크며, 바다와 땅이 제일 큰 하늘에 포용되니 하늘은 진실로 더욱 크다. 바다를 거두는 땅과 땅을 포괄하는 하늘이 한 이치 가운데서 열렸다 닫혔다 하니, 이치는 또 하늘과 땅이 이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다.”
이 이치를 일월오악도와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파수는 오악에 포용되고 오악은 다시 일월이 빛나는 호천에 포용된다. 일월오악도의 하늘과 바다와 오악은 그러한 포용과 분화의 이치를 드러내는 가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분화와 포용의 이치는 바로 태극과 음양의 이치이므로 일월오악도는 일월과 오악과 바다를 빌어 태극의 이치를 나타낸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물줄기와 소나무
<서경> 우공(禹貢)편에 “강한조중어해(江漢朝宗於海)”라는 말이 나온다.
‘강수(江水)와 한수(漢水)가 바다에서 조종(朝宗. 朝會)한다’는 뜻이다.
지상의 모든 물줄기가 아직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 형세는 이미 바다로 달려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백관들이 궁궐로 모여들어 임금을 알현하는 것을 흔히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에 비유했다. 일월오악도에 두 줄기 폭포가 그 아래쪽에 펼쳐진 짙푸른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천하가 임금에게 귀의하고 백관이 조회함을 상징한다.
한편, 소나무는 3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유교적 절의와 지조
2)탈속과 풍류
3)장수 또는 장구(長久)의 상징이 그것이다.
일월오봉도의 소나무는 장구의 상징으로서의 소나무를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나무가 장구의 상징으로 간주하게 된 것은 <시경>의 천보(天保) 시 등 고전 속에 나오는 장생수로서의 소나무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천보>시의 내용 중에,
‘소나무 잣나무 무성하듯이 임의 자손 무성하리(如松栢之茂 無不爾或承)“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소나무가 지닌 장생수로서의 속성을 인간사에 대비시킨 것이다.
이에 연유해서 소나무를 장수를 축원하는 상징어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원래 <천보>시는 단순히 왕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아니라 국가의 기업(基業)이 장구하고 공고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시이다. 따라서 일월오봉도의 두 소나무는 왕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소나무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연을 법 삼아 백성을 다스리다.
일월오악도의 일월과 오악과 파수와 낭수, 유수 역시 음양과 오행, 그리고 포용과 분화로 설명되는 우주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는 상징형으로 존재한다.
오악에 적용된 5의 수와 일월에 적용된 2의 수는 상수의 상징체계를 보여주며,
해와 달에 적용된 붉은 색과 흰색은 음양 표현의 회화적 상징체계를 이룬다.
이처럼 일월오악도의 형과 색과 수는 각각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어 깊고도 오묘한 우주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고 있다.
노자(老子)는 말했다.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세계에는 4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이 그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다. 또한 사람은 땅을 규범하고, 땅은 하늘을 규범하고, 하늘은 도를 규범하며 도는 자연을 규범으로 한다.”(老子 25章, 故道大 天大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이 말은 왕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는 뜻이며, 왕은 자연의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왕은 모든 백성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지존이자 신성한 존재다.
왕은 자신의 권위와 지배권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법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리는 천(天)의 아들임을 만인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조선 궁궐 당가나 어좌 뒤편에 펼쳐졌던 일월오악도는 바로 그러한 왕권의 위엄과 정통성을 형과 색과 수의 상징체계를 통해 과시한 한국 궁궐 특유의 어좌 장엄용 그림이라 할 것이다.
월간문화재 2011.8월호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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