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스크랩] 자연 속에서 쉬고 배우는 곳, 정자

깜보입니다 2011. 9. 5. 14:28

농사로 삶을 꾸려온 조상들에게 자연은 삶의 터전 그 이상을 의미했습니다. 농부의 정성으로 곡식창고가 되고, 적이 침입하면 방어벽으로 기능하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피서지가 되는 자연은 사람들의 배움터이자, 배움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매화에서 절개를, 탁한 물에서 깨끗하게 핀 연꽃을 통해 군자상을, 곧게 자라는 대나무를 보며 기개를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유교문화 종합 DB (http://www.ugyo.net)' '문화재 학술조사 연구정보 DB (http://www.nrich.go.kr)'의 도움을 받아 인생과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공간으로 선비들이 자주 찾은 정자(亭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의 멋 누정' 동영상
'한국의 멋 누정' 동영상 
    출처: 대한뉴스 / 국가기록영상 DB   ☞ 바로가기



>> 자연 속 ‘자연의 일부’, 정자

정자는 자연경관 감상과 휴식을 주된 목적으로 지어진 간소한 목조건물입니다. 정자라는 낱말은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곳이란 뜻으로, 정자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사색하는 공간입니다. 정자는 대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주거지 연못 옆, 또는 산천 경계나 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자의 특징은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있어 주변의 자연 경관을 막힘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정자 자체는 인공의 구조물이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지나가는데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잔디를 깔고, 나무와 꽃을 심어 인공적으로 배열해 꾸민 정원 보다 친환경적인 정자는 붉은 단풍과 소나무 숲,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자연 경관이 입지요건인 동시에 감상 대상입니다. 

 정자 (새창)
정자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정자문화의 사상적 배경

> 유교사상 : ‘출처지의’를 지켜야 한다.

부용동 정원 안에 있는 세연정(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나 소쇄원에 있는 대봉대(봉황을 기다리는 곳), 제월당(맑은 하늘의 상쾌히 뜬 달), 광풍각(비 개인 뒤 해가 뜨며 부는 청향한 바람)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출사의 뜻을 접은 선비가 세운 정자입니다.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는 것을 반대한 윤선도. 자신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세상을 뜨자 낙향한 양산보. 두 사람 모두 조선의 선비로 출처지의(出處之義)를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출처지의는 선비가 대장부로서 세상에 나아가 관인의 입장에 있을 때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힘쓰지만, 세상이 자신의 이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관직에서 물러나 처사의 입장에서 대의와 명분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정자는 바깥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 머물면서 정신적 행복감을 느끼는 공간이었습니다.

> 도가사상 :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도가사상의 핵심은 도(道)와 무위(無爲)로, 도는 삼라만상의 궁극적인 원리를 뜻하고, 무위는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선비들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자 했습니다. 대자연의 법도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자연의 운치를 즐겼고, 정자를 지을 때면 자연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해 전체 분위기를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연의 순리를 따름으로써 무위의 법도를 체득하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도가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 풍수사상 : 길한 터를 잡고, 명당화 한다.

풍수는 음양론과 오행설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를 체계화한 전통적인 논리구조로 길한 것을 추구하고 흉한 것을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산, 물, 방위, 사람 등 네 가지의 조합을 살펴보는 풍수사상은 도읍이나 마을 터를 정할 때는 물론 건물이나 정원수의 배치에까지 영향을 미친 전통적인 기복사상입니다. 경정이 있는 서석지 정원의 경우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어 풍수적으로 명당이며 길지에 해당됩니다. 이는 서석지 정원을 조성한 정영방이 주변 풍수를 충분히 고려했음을 뜻합니다. 성리학과 시에 능했던 정영방은 광해군 재위 때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을 연구하며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 정자 건립 목적과 기능

정자는 풍류, 관망, 휴식을 위해 건립된 것이 많고, 일부는 추모 기념, 주거, 강학용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휴식의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기 때문에 주로 산천이 수려한 곳, 바닷가나 강가의 절경 또는 농촌의 경작지 한 가운데 등 휴식 공간의 필요성이 있는 곳에 들어섰습니다. 한편 독립된 단일 건물이 아니라 궁궐, 사찰, 향교, 서원, 일반 주택에 부속된 시설로 짓기도 했습니다.

> 쉼터

정자에는 쉼터의 기능이 있습니다. 넓은 논밭 가운데 서 있는 모정(茅亭)이나 동구의 정자는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쉬거나 새참을 먹을 때 유용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교통이 불편했던 시대에 험한 길을 걷다가 발이 아프고, 목이 마를 때 정자는 길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힘을 얻는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또한 대자연 속에 있는 정자에는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정신을 깨끗이 하고 생각을 맑게 하는데 자연만한 특효약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정자는 이처럼 주변 환경을 고려해 세워지는 만큼 어느 경관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건물의 좌향이 결정됐습니다. 남향을 선호하는 주택과 달리 북향 혹은 서향의 정자가 많은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다른 건물과 달리 마루면이 높은 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경치를 보려는 의도가 설계에 반영된 것입니다.

> 시가 태어나는 곳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정자는 많은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표현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대사헌을 지낸 송순은 고향인 담양에 면앙정을 짓고 은거할 때 주변 산수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면앙정가》로 노래했습니다. 또한 송순은 ‘면앙정 가단’을 이루어 면앙정을 많은 학자, 가객, 시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내줬습니다. 이밖에도 조선 중기 문신 김윤제가 후학을 가르치던 환벽당,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의 식영정에도 각각 ‘환벽당 가단’, ‘식영정 가단’이 있었습니다. 한편 송강 정철은 김윤제의 제자로 환벽당에 머물며 공부했습니다. 정철은 대사헌직을 물러난 후 송강정을 세우고, 임금을 그리며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었습니다. 이들 정자는 모두 담양 일대에 있었고, 가단 내부의 교류와 창작생활은 물론 가단 사이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실력을 겨루기도 했습니다.

 면앙정 전경 (새창)
면앙정 전경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입지에 따른 정자의 분류

> 강이나 계곡에 있는 정자 : 작천정, 금선정, 만휴정, 의상대 등

강이나 계곡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백사장 등의 광활함을 바라볼 수 있으며 특히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감상하는 등 서정적인 공간에 정자가 세워집니다.

의상대 (새창)
의상대
    출처: 문화재 학술조사 연구정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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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에 세운 정자 : 피향정, 경호정, 애련정, 부용정 등

자연적인 못이나 인공적인 연못에 세워지는 정자입니다. 이런 정자는 못의 한쪽가나 중앙에 세워 물과 주변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치합니다.

창덕궁 부용정 전경
창덕궁 부용정 전경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산마루나 언덕 위에 세운 정자 : 방화수류정, 취규정, 백화정 등

산의 정상이나 중턱 또는 높직한 언덕 위에 위치해 주위의 숲과 멀고 가까운 경관을 바라보기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으로 간혹 망루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방화수류정 전경 (새창)
방화수류정 전경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집 안에 세우는 정자 : 활래정, 관가정, 독락당 계정 등

일반적인 주택보다는 별서의 성격을 띤 주택에 들어선 정자로 다른 것과 달리 인공성이 강조된 공간적 특징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활공간 주위에 위치한 곳이 많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관가정 전경 (새창)
관가정 전경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자연과 함께 머무는 곳, 정자

> 군자정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경남문화재자료 제380

넓은 영귀대 바위 위에 서 있는 군자정의 명칭에서 조선의 근간인 유교의 영향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말로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사실 ‘군자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는 전국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군자’라는 목표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군자정은 1802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전세걸과 전세택이 건립했습니다. 전세걸과 전세택은 군자정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거연정 주인 전시서의 후손입니다. 군자정이 있는 함양군 서하면은 정여창의 처가가 있는 마을로, 그는 처가에 들릴 때면 군자정이 세워진 유영대에 자주 들렀다고 합니다. 한편 화림동 계곡에는 군자정 뿐만 아니라 거연정, 동호정, 농월정 등의 많은 정자가 건립되어 있는데, 이는 이곳의 자연경관이 빼어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초간정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

초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권문해가 공주목사를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머물던 공간입니다.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학자로, 초간정이란 명칭은 그의 호 ‘초간’에서 따왔습니다. ‘초간’의 의미에 대해 권문해는 “송나라 주돈이가 뜰에 자라는 풀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고 지켜보면서 천지기운이 생동하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에게 자연이 배움터이자 배움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초간정은 전면 세 칸, 측면 두 칸 건물인데 건물 중심에는 우중충한 날씨나 추운 겨울에도 정자에서 지낼 수 있도록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 시냇물 쪽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한 장치입니다.

초간정 전경 (새창)
초간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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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수정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전북문화재자료 제165호

지리산 뱀사골 입구에 위치한 퇴수정은 조선 후기 선비 박치기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1870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퇴수’는 관직에서 물러난다는 뜻으로 당시 선비들의 철학인 출처지의와 관련 있습니다. 출사와 출세의 길 대신 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것을 선비의 도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퇴수정은 산이 정자를 감싸고, 앞쪽에는 개울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에 세워졌습니다. 2층 누각형 건물인 퇴수정은 정면이 네 칸, 측면이 두 칸이며, 중앙 칸 뒤편에 방 한 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재 퇴수정은 밀양박씨 은산공파 매천종중 소유로, 퇴수정 왼쪽에는 박치기의 후손들이 지은 사당 ‘관선재’가 있습니다.

> 임대정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 전남기념물 제69호

임대정은 조선 철종 때의 문신 민주현이 조성한 별서정원에 있는 정자입니다. 정자가 있던 자리는 조선 선조 때 문인 남언기가 자연과 벗하며 여생을 보낸 공간이기도 합니다. 민주현은 국가의 녹을 먹는 관리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습니다.

경치 속에 자연스레 들어서는 것이 정자의 입지요건이고, 봉정산과 사평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임대정이지만 주변에 조성된 연못과 원림은 인공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별서정원에 속한 정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간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았다고 해서 임대정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연못 주변 바위에는 ‘세심(洗心)’과 ‘피향지(披香池)’라고 바위에 새긴 글귀가 있는데, 이는 각각 마음을 깨끗이 씻는다와 향기가 퍼지는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 애련정 :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에 있는 애련정은 연꽃이 피는 연못인 애련지 북쪽에 있습니다. 송나라의 주돈이는 <애련설>에서 흙탕물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연꽃을 ‘군자’라고 칭송했습니다. 연못 한 곳에 있는 연꽃은 단순한 감상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습니다.

애련정은 궁궐 안에 있는 정자로 창덕궁은 부용정, 승재정, 관람정, 존덕정, 농수정, 태극정 등 정자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정자들은 경관 감상과 휴식, 간단한 연회를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지는 일반적인 정자와 달리 궁궐은 환경이 제한된 탓에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는 등 사람의 손길로 자연 경관을 재현했습니다.

창덕궁 비원애련정 전경 (새창)
창덕궁 비원애련정 전경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영모정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전북문화재자료 제15호

영모정은 조선시대에 살았던 효자 신의연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건립됐습니다. 신의연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조선 땅에 들어온 왜적들은 신의연이 있는 전라도 진안군에 침입했습니다. 신의연은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병든 아버지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효자신의연’이라는 글자를 피로 써 왜장에게 건넵니다. 왜장이 이 종이에 불을 붙였는데, 혈서는 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놀란 왜적은 그 마을을 떠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실은 신의연이 세상을 떠난 후 선조 임금의 귀에 들어갔고, 임금은 많은 이를 살린 효자에게 종8품에 해당하는 ‘수의부위’라는 벼슬을 내리고 효자각을 세우라고 명했습니다.

영모정은 효자각 앞 냇가,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느티나무 숲속 경치 좋은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영모정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누각 아래 사면의 각기둥은 거북머리 모양의 둥근 돌을 사용했습니다. 정면의 네 기둥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1m 정도 더 내려와 있습니다.




※ 참고문헌 및 참고사이트

ㅇ『한국의 정자』박언곤, 대원사, 1989
ㅇ『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허균, 다른세상, 2002
ㅇ『한국의 누와 정』허균, 다른세상, 2009
ㅇ『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2 -앎과 삶의 공간』김봉렬, 돌베개, 2006
네이버 백과 사전 (http://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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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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