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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다

깜보입니다 2012. 5. 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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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다

유네스코는 1995년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인데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해, 기록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세계기록 유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판, 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과 같은 기록물은 이제 ‘한국’만이 아닌 세계와 인류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2011년 5월, 이 유산에 새롭게 추가된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입니다.

오늘은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민주화운동 사료 DB(http://db.kdemocracy.or.kr)의 도움을 받아 5.18 관련 기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세계기록유산, ‘5.18 기록물’의 내용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은 모두 9개 주제로 기록문서철 4,271권(85만 8,900페이지)과 필름 2,017개에 이르는 막대한 분량입니다. 이들 자료에는 5.18의 초기 전개과정과 흐름이 잘 나타나 있으며, 구술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증언, 연구 내용 등과 일치하는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국가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1980년 5월 18일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 기관에서 생산한 문서들입니다. 5.18 당시 각 기관에서는 계엄 포고령을 시달하고 계엄에 협조하라는 지시 등의 공문서를 지방정부에 전달했으며, 이 문서에는 피해상황, 수습대책, 복구기준, 시체 매장계획, 사망자 인적사항 조사보고, 매장자 명단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포고령 위반 관련 처리지침 및 지시, 무혐의 처리 수사기록, 위반사범 접수 및 조사현황 등도 들어 있습니다. 자료 원본은 그동안 광주 동부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며 최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 보존중입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연대생들 (새창)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연대생들
출처 : 민주화운동 사료 DB ☞ 바로가기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자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5.18 배후조종자로 신군부의 군법회의에 회부돼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1992년 석방된 뒤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습니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로 명예회복이 이뤄졌고, 김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2003년 재심을 청구해 2004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 군사법기관 재판자료

5.18 당시 진압에 나선 특수부대, 보병부대 등 2만여 명이 동원돼 시민, 학생을 학살했던 자료입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군사재판을 받았고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자행됐으며, 이들은 사형,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이감됐습니다.



> 시민 성명문, 기록과 증언 (5월일기, 취재수첩 등)

학생과 시민들은 절박한 상황과 신군부의 불법성과 야만성을 폭로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명문, 선언문, 호소문 등을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또 시민들은 당시의 상황을 일지 형식 또는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했고, 신문기자들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현장에서 기자수첩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증언기록으로는 생존 인사들의 체험을 문자와 음성, 영상으로 체록한 것과 가담자와 유족 1,500여 명의 증언 등이 들어 있습니다.

광주학살 주범 처벌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광경 (새창)
광주학살 주범 처벌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광경
출처 : 민주화운동 사료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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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등

미국은 5·18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 국무부와 주한 대사관 사이에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전신 자료와 국방부와 CIA에서 생산한 문서가 포함됐습니다.


이 밖에도 국회의 5·18 진상규명 회의록(청문회기록),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피해자들의 병원치료기록, 사진(필름) 자료 등의 ‘5.18 기록물’이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 유네스코의 ‘5.18 기록물’ 기록유산 등재 이유

세계기록유산 마크이번에 제출된 5.18 기록물들은 항쟁의 당사자들이 '폭도'로 몰려 구속되고, 많은 시민들이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고 지속적으로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기록들입니다. 5.18 기록물은 부당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존엄성을 유린할 때 얼마나 비극적이며 반인권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신념을 지킨 광주 시민들의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5.18 기록'을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시킨 이유는 5.18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과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숭고한 저항을 담은 기록을 인류가 보존하고 후세에 교육해야 한다는 우리 측의 신청 동기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또한 진실성과 역사성에서 큰 의미를 가진 5.18 기록물들은 그 내용뿐 아니라 자료 자체의 다양성과 포괄성이라는 측면에서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세계기록 유산 등재 이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 유산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라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이에 따라 기록물들이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유네스코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 기록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통한 보존을 장려
-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접근을 보장하고 평등한 이용을 장려
- 세계적 중요성을 가진 기록유산에 대한 모든 국가들의 인식을 높임

이제 5.18 기록물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사업 일반 운영지침에 따라 기록유산 부산물들의 보급과 인식 제고 등을 보장받을 수 있고 보존관리에 있어서 유네스코의 보조금 및 기술적 지원은 물론 세계기록유산 로고를 사용하고 유네스코를 통한 지속적 홍보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와 5.18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는 기록물을 5.18 사적지 중 한 곳인 광주 가톨릭센터에 '5.18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관한다는 방안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5.18 아카이브를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5.18 기록물은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광주시는 5.18 기록물을 민주,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알리는 지침서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 5.18 관련 기관 및 사적지


>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 운동 (http://contents.kdemocracy.or.kr/518)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5.18기념재단이 공동으로 제작한 5.18 관련 지식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이 자료에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5.18의 전개과정, 5.18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5.18의 의의까지 사진자료를 첨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운동 아카이브 (새창)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운동 아카이브 ☞ 바로가기


1. 1980년 5월! 왜 군인은 시민에게 총을 쏘았는가?

비상계엄을 철폐하라고 외치는 시민, 계엄군의 무차별 연행과 폭행, 희생자들이 묻힌 망월묘지, 죄수복을 입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의 모습 등 9장의 사진으로 짧고 분명하게 5.18을 환기시킵니다.

2. 유신체제의 종말과 서울의 봄

5.18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정치적 상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신체제의 막바지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등장한 신군부와 민주화를 요구한 1980년의 ‘서울의 봄’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3. 1980년, 5월 광주

1980년 5월, 전국의 민주화 열망에 발맞추어 광주와 전남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민주화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총과 칼을 든 계엄군은 폭력으로 진압했습니다.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가한 폭력은 사람들의 기억과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5월의 광주를 증언합니다.

4. 광주여 무등산이여!

5월 19일 계엄군은 처음으로 시민에게 총을 쐈습니다. 이후로 간헐적, 집단적으로 발포가 이어졌고 목숨을 잃은 광주시민들이 생겨났습니다. 계엄군의 총격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은 경찰서나 예비군본부에 보관돼 있던 무기로 '시민군'을 형성합니다. 이후 시민군에 의한 자치공동체가 생겨났고, 계엄군은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합니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자료와 신문기사, 시민들의 결의문, 동영상을 첨부해 5.18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5.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광주는 ‘폭도의 도시’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 이후 5.18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대학생을 비롯해 5.18 관련자들을 통해 끝없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국회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숨진 이 일의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1995년 '5.18 특별법'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들은 처벌을 받았습니다.

6. 광주항쟁의 결과와 의의

사망 154명, 행방불명 70여 명, 부상자 3,208명, 기타 1,628명 등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5.18 인적피해만 총 5,060명입니다. 1990년 7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배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등 주요 사건이 전개되었던 도심지역에는 기념물들이 만들어졌고, 5.18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이 묻힌 망월묘역은 추모공간으로 조성됐습니다.


이밖에도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 운동’ 홈페이지에서는 5.18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참고자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과 영상자료는 물론 5.18 관련 단체와 기관의 사이트까지 링크를 걸어 안내하고 있습니다.


> 5.18기념재단 (
http://www.518.org)

‘5.18기념재단’은 1994년 8월 5.18 관련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금의 일정액으로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됐습니다. ‘5.18재단’은 5.18민주와 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사업(5.18사료관리, 5.18예술전, 5.18청소년연극제, 5.18청소년문화제, 교육자료 발간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
http://518center.gjcity.net/index.jsp)

5.18기념공원, 5.18자유공원, 5.18기념문화관을 총괄하는 ‘5.18기념문화센터’는 옛 상무대 자리에 조성됐습니다. 정부가 상무대 이전부지 일부를 시민공원부지로 제공함에 따라 이곳에 5.18 관련 시설물 및 다목적 시민 휴식공간을 갖춘 5.18기념공원과 80년 당시 군사법정과 영창을 원형으로 복원한 5.18 자유공원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5.18기념문화관은 공연, 행사, 전시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민주홀, 대동홀, 리셉션홀, 5.18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 5.18 민주화 운동 사적지

> 망월동 구묘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숨진 이들이 묻혔던 곳으로 ‘망월동 묘지’라 불려왔습니다. 당시 피해자 가족과 친지들은 공포와 분노에 떨며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습니다. 이후 1997년 새로운 5.18묘지가 완성되자 새 묘역으로 이장됐습니다. 망월동 구묘지는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인데다 그 동안 수많은 국내외 참배객들이 수 없이 다녀간 곳이므로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광주 망월동 묘지 (새창)
광주 망월동 묘지
출처 : 한국정책방송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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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5·18 민주묘지

‘신묘역’이라 불리우는 국립 5·18민주묘지는 광주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따라 국립묘지가 됐습니다. 수많은 투쟁에 의해 5·18민중항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짐에 따라 1994년부터 시작한 5·18묘지성역화 사업이 3년만에 완공되어 구 묘역에 묻혀 있던 분들부터 이곳에 안장 됐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는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으며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는 민주의 문, 숭모루, 역사의 문, 추념문, 유영봉안소, 추모탑, 부조, 헌수기념비, 사진자료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 5.18 기념공원과 5.18 자유공원

5.18기념공원 내에는 기념문화관,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 공간, 오월루 등 5.18관련 시설물과 휴게공간 및 공원기반 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특히 기념문화관은 5·18정신에 대한 교육의 장 및 인권센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은 "아! 광주여 영원한 빛이어라"라는 작품주제로 스테인레스 폴, 인물·모자상, 관, 제기, 조명, 희생자 이름, 지하부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18자유공원은 5.18민주화 운동으로 구금돼 군사재판을 받았던 상무대 법정과 영창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곳입니다.


이밖에도 전남대학교 정문, 광주역 광장, 금남로, 5.18최초 발포지 등 총 25곳의 사적지가 광주시내 곳곳에 있고 현재 국립5.18민주묘지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들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 참고자료

ㅇ 유네스코 세계유산(
http://www.unesco.or.kr/heritage/mow/index.asp)
ㅇ 제5기 국가기록원 서포터즈 넷띠(
http://cafe.naver.com/aos1th)


- 국가지식포털 객원기자 조은미 -

 

출처>https://www.knowledge.go.kr/jsp/theme/themeView.jsp?themeIdx=15067&dir=al&page=1&searchOption=all&search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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