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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세대가 변하고,시대가 변했다. 수궁가를 떼창하고, 종묘제례악 테크노를 듣는다!

깜보입니다 2020. 11. 6. 08:59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이날치는 2019년 초 서울의 홍대 라이브클럽 공연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공개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네 명의 판소리 보컬이 부르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주술적인 가사, 두 명의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 내는 리듬과 그루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재기발랄한 몸짓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상을 본 많은 사람은 ‘이게 바로 조선의 힙이다’ 같은 리뷰를 남기며 이날치에 감탄했다.

 

이날치는 지난 5월 정규 1집 「수궁가」를 발표하고 LG아트센터에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함께 1집에 실린 13곡을 공개했다. 이후 피자 CF에 이들의 음악이 등장하더니, 한국관광공사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서울·부산·전주 홍보영상 세 편이 2개월 만에 온라인 소셜 미디어 조회 수 2억 뷰를 넘겼다. 각종 방송프로그램에도 이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범 내려온다」를 정확히 따라 부른다. 별주부가 육지로 올라와 토끼를 발견하고 반가움에토끼를 ‘토생원~’하고 부른다는 게 그만 턱에 힘이 빠져 ‘호생원~’이라고 호랑이를 불러버려 난데없이 호랑이가 내려오는, 판소리 < 수궁가 >의 한 장면을 말이다.

 

이날치의 중심엔 장영규가 있다. 영화 <타짜>, <달콤한 인생>, <놈놈놈>, <부산행> 등의 영화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진 장영규는 한국형 아방가르드 음악의 상징인 ‘어어부 프로젝트’, 불교음악, 가면극 음악, 궁중음악을 소재로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던 ‘비빙’, 민요를 접목한 로킹한 사운드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돋보였던 밴드 ‘씽씽’을 이끌었다. 판소리 보컬 4인방 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은 전통판소리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 온 소리꾼들이다. 이들은 국악뮤지컬, 음악극, 타 장르 음악과의 창작과 협업을 통해 ‘변화’와 ‘수용’에 거침없다.

 

이날치를 결성하게 된 계기도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된 음악극 <드라곤킹> 작업을 하면서다. 수궁가를 소재로 하는 창작 음악극의 음악감독을 장영규가 맡았고, 소리꾼들은 장시간 독창으로 부르는 수궁가의 주된 대목을 찾아 나눠 부르고 함께 불렀다. 작업 이후 ‘극이 아닌 노래에 집중하며,재밌는 댄스뮤직을 만들어 보자’에서 시작된 실험은 이날치가 되었다.

 

이날치는 소리와 고수의 북반주로만 이루어지는 전통음악의 맥락을 살려, 네 명의 보컬과 리듬을 맡는 두 대의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었다. 노래하는 사람의 억지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아닌, 전문 춤꾼이 함께하며 이들의 음악이 댄스뮤직임을 선명하게 정의한다. 음악은 판소리 수궁가의 판타지와 서스펜스의 서사를 바탕으로 잘 만들어진 얼터너티브 팝, 신스팝, 뉴웨이브, 사이키델릭이다. 서로가 잘하는 것을 알고, 각자의 몫으로 자유롭게 만나는 거다. 이들의음악은 단순하게 국악의 대중화나 현대화로만 볼 수 없다.

 

 

 

개성 넘치는 뮤지션이 이렇게 많았어?

혹자는 이날치의 전신을 ‘씽씽’에서 찾는다. 씽씽은 장영규와 경기민요 소리꾼인 이희문이 주축이 되어 2014년에 결성된 밴드다. 장영규(베이스), 이태원(기타), 이철희(드럼)와 민요를 부르는 보컬 이희문, 추다혜, 신승태로 구성된 6인조 밴드로 민요를 레게와 훵크 스타일로 재구성해 불렀다. 세 명의 소리꾼은 드랙퀸이나 글램록을 연상케 하는 쇼킹한 비주얼로 등장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베틀가」, 「옹헤야」 등을 불렀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씽씽은 2017년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출연한 영상이 조회 수 100만 뷰를 넘기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밴드는 2018년 해체되었지만, 씽씽에서의 기회와 경험은 각자의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씽씽에서 화려하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이희문은 보이스와 리듬악기가 중심이 되는 <이희문프로젝트 날>,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재즈와 ‘잡가’를 혼합한 <한국남자(이희문×프렐류드×놈놈)>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로 다시 한 번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희문은 이후 놈놈, 노선택이 이끄는 밴드 허송세월과 함께 <오방神과> 프로젝트를 꾸리고 오방신으로 분하여,중생과 함께 고통과 번뇌가 가득한 속세를 탈출하는 여정을 선사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경기민요의 문화와 역사를 경기민요, 잡가와 함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선보인 <깊은사랑(舍廊) 3부작>을 선보이며 종횡무진 중이다.

 

 

씽씽의 보컬로 서도민요를 전공한 소리꾼 추다혜는 해체 이후 ‘추다혜차치스’를 결성하고 첫 정규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발표했다. 기타, 베이스, 드럼에 서도민요와 제주 영등굿을 소재로 사이키델릭, 펑크, 트랜스에 가까운 무가를 선보인다. 음악평론가 배순탁은 “샤먼의 제의와도 같은 음악이, 신명으로 접신하는 무당의 음악이 2020년이라는 타임라인에 이렇게 근사하게 들어맞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다”라고 평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룻츠(Roots)&컬처(Culture)라는 공통분모로 레게와 판소리의 만남을 시도하며 2019 WOMEX(World Music Expo) 쇼케이스에 선정되어 호평을 받은 ‘김율희×노선택과 소울소스’, 황해도 굿과 민요에 대중음악을 접목한 흥겨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악단광칠’, 에스닉 퓨전밴드 ‘두번째달’과 젊은 소리꾼 ‘김준수’는 판소리 <춘향가>를 새롭게 편곡해 들려주며 활약 중이다.

 

민요나 판소리가 아닌, ‘가곡’을 소재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팀도 있다. 정가 전공으로 다양한 공연, 전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전통과 다원예술의 경계를 넘는 아티스트 박민희와 국악 타악 전공으로 전자음악과 무용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낸 최혜원이 2020년 결성한 ‘해파리’는 앰비언트와 테크노를 기반으로 한때 남성의 음악이었던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여성의 목소리로 전복한다. 이들은 건반악기와 타악기, 가상악기 그리고 목소리를 주 악기로 작·편곡한음악과 세련된 비주얼로 호평 받고 있다.

 

 

 

틀을 없애고 선을 지울 때

이러한 아티스트나 콘텐츠가 불현듯 나타난 것 같지만, 그간의 무수한 시도와 실험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전통음악은 대중음악과 끊임없이 만났다. ‘국악의 대중화’가 전통음악계의 최대 미션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대개의 음악이 맥락 없이 섞이고, 명분 없이 만났다. 창작자들은 수세기 이전의 음악을 21세기 현재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몰랐고, 듣는 사람이 고려되지 않았다.

 

2020년, 세대와 시대가 변했다. 전통음악을 이해하기 시작한 대중음악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조금 더 동시대적인 방법으로 창작을 리드하고 청자를 고려한다. 국악 전공이지만 동시대의 공연예술, 다양한 대중음악과 하위문화를 접한 젊은 창작자들은 전통에서 자유롭다. 좋아하는 타 장르의 음악 문법을 학습하고 이해하며 협업을 시도한다. 전통의 ‘당위’보다는 뮤지션 개인의 ‘취향’이나 ‘재미’가 더 중요해졌다.

 

관객도 이를 정확히 안다. 내 개인의 취향과 감성이 그대로 반영된 콘텐츠를 ‘디깅(Digging)’하고 ‘공유(Share)’하는 것이 ‘놀이’가 된 세상이다. 더는 옛 것이 오래되고 지루한 것이 아니다. 숨겨진 옛 것을 발견하고, 동시대의 맥락과 시선으로 즐기는 것이 ‘힙(Hip)’한 게 되었다. 수궁가를 떼창하고, 내려오는 범과 함께 스텝을 밟고, 서도민요를 들으며 트랜스로 향하고, 종묘제례악 테크노가 BGM이 되는 시절, 그 다음이 몹시 궁금해진다.경험은 경험을 낳는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든다.

 

 

글, 사진자료. 김미소(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총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