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스크랩] 서오릉중 경릉 답사

깜보입니다 2007. 11. 25. 12:46

지난 11월 17일 서오릉의 경릉 답사 후기입니다. 큰 아들과 함께 둘러보았고, 동일한 내용을 큰아들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카페에도 한번 올려봅니다.

 

경릉은 세조의 맏아들로 1457년 9월 2일 20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요절한  의경세자 (성종에 의해 덕종으로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동원이강릉입니다.

경릉은 조선 왕조의 능원중 유일하게 우상좌하의 원칙이 깨져 좌상우하로 능역이 조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상좌하란 무덤을 만들 때 남편이 오른쪽, 부인이 왼쪽에 놓이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의경세자는 세자의 지위에서 죽었고, 당시 세자비였던 소혜왕후는 나중에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왕비의 지위에 이르고, 다시 대비의 지위에 까지 오르기 때문에 살아서의 신분은 남편인 세자의 지위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따라서 연산군 때 소혜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우측에 택지하게 되는 것이고 조성되어 있는 상설도 덕종릉보다 훨씬 화려하여 난간석과 무인석까지 갖춘 왕릉의 형태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덤의 좌,우를 따질 때는 누워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보는 것과는 반대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동원이강의 경릉중 좌측에 위치한 덕종릉의 전경입니다.  세조가 직접 답사하여 택지한 곳이니만큼 봉분 뒤쪽의 잉이 아주 뛰어납니다. 아래에서 봐도 불쑥 솟아 오른 모습이 범상치 않습니다.

이따가 살펴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우측 능과는 다르게 아주 소박한 외형을 하고 있으며, 덕종능은 이후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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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지를 올라 능상에 보이는 것은 장명등과 혼유석, 문인 한쌍과 석마 한쌍입니다. 특이하게 망주석이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언뜻 보아서는 석물의 크기가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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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을 잡고 서있는 좌측 문신석입니다. 사모관대를 한 단정한 모습입니다. 다른 장식조각 없이 깔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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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문신석의 뒷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옷의 주름과 허리띠의 형태가 완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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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제 둘째 손자가 좌측 문신석에 기대어 선 모습입니다. 아주 크죠, 조선 전기 석물의 전형적인 예로 실물보다 훨씬 큽니다.

국조오례의의 '치장'편에 의하면 키는 8척 3촌, 너비는 3척, 두께는 2척 2촌이라고 합니다. 언뜻 봐도 그에 부합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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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문신석의 모습입니다, 표정이 좌측 문신석과는 틀려서 구분 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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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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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문신석의 얼굴입니다. 후덕한 인상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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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입니다, 조선 전기 양식으로 팔각 옥개석을 한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장중합니다. 봉분에는 애초에 세자묘의 형식으로 조성된만큼 난간석이나 병풍석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무신석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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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유석의 고석에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이는 소혜왕후(인수대비)능의 고석도 마찬가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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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유석의 모습입니다, 고석이 네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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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석이 대동하고 있는 석마입니다. 다리 사이를 파내지 않고 남겨두어 화초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일설에는 말이 풀을 먹기 때문에 저렇게 장식을 했다는 설도 있고, 어쨌든 국조오례의의 석마 도상에도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왕릉 상설의 표준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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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장 안의 석양입니다. 잔디가 무성하여 다리가 잘 보이지 않는군요. 양의 다리 사이도 역시 파내지 않고 화초를 장식합니다.

이 사진에는 자세히 보이지 않네요. 석양의 뿔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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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곡장안의 석호입니다. 돌이끼가 잔뜩 끼여있는데, 이런 돌이끼 때문에 석물이 많이 손상됩니다. 정기적으로 세척하며 관리하면 손상이 덜 될텐데 아쉽습니다. 이 사진에서는 곡장 뒷쪽의 불쑥 솟아오른 잉이 인상적입니다.

이른바 입수가 뛰어나다는 형상으로, 모르긴 해도 세조도 이런 명당에 큰 아들의 묘를 정하게 되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라 상상해봅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 '왕과 나' 때문에 소혜왕후능을 보고 싶어서 서오릉을 들렀습니다.  쓰긴 했지만 지면이 부족해서 정작 소혜왕후능은 쓰지도 못하고 남편 덕종능에 대해서만 썼네요. 소혜왕후 등 다른 능원에 대한 설명은 지루하실 것 같아 생략하겠습니다. ^^;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景山(정한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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