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언제 우리가 일본을 용서했는가

깜보입니다 2008. 5. 1. 11:03

그리고 일본은 언제 우리에게 용서를 빌었는가?

 

“친일 문제는 국민 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이명박 대통령님의 말씀이시다. 그런데 대단히 궁금한 질문 두 가지를 글제와 소제목으로 또다시 묻는다.

 

언제 우리가 일본을 용서했습니까?

글쓴이의 기억력이 별로 나쁜편이 아닌데 우리가 일본을 용서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용서라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최민수씨가 노인네를 겁나게 구타하신 후에 오늘 뉴스에서 노인네가 최민수를 용서한다고 앴는데 그건 최민수씨가 겁나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심오하게 용서를 비는 까닭으로 용서하신다는 말슴이 계셨다. 용서가 쌍방의 진정이 통할때 가능하다는 것인데, 언제 우리가 일본을 용서했느냐는 질문에는 언제 일본이 용서를 빌었느냐는 말로 그 전제를 따져야 한다.

 

사과없는 용서는 빌어처먹을 일이다.

상대가 용서를 빌지 않는데 먼저 용서한다는 것인 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개인도 그런데 국가라는 단위에서의 무조건적인 용서란 어찌보면 굴욕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본도 용서했다는 이명박 대통령님의 말씀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말에서 우리는 그의 역사관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이 대단히 위험한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나온 동기가 단순히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에 임하여 대통령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님은 결국 친일파라는 인사들을 두호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용서론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비루한 역사인식이고 저급한 수준의 망언이다.

 

친일파 옹호론자들

흔히들 친일파라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해 凡夫論을 들먹이는 자들이 많다. 친일파 본인은 물론이고 주로 그 혈육들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동일한 사람들이 단골로 주장하는 것이다. 어제의 범부가 해방후에는 민족지도자 내지는 유력한 건국유공자가 되는 것이 범부론이 노리는 함정이다.

또하나는 牽强附會를 일상으로 삼는 자들이다.  엉뚱한 예를 들거나 헛점을 들어서 아예 친일파로 인정된 모든 자들을 구하려는 의리하나는 끝내주는 조폭식의 의리를 갖춘 사람들이다. 예컨데 일부 친일파의 혐의 내지는 친일파라 말해도 상관없는 자들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을때 그들도 친일파가 아니니 이 사람들도 아니라는 식의 물타기 작전을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떳떳하게 주장할 방법이 없으므로 뚱딴지같은 예를 들어서 전체를 부정하자는 가장 야비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님은 어느 부류인가?

아쉽게도 두 부류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이 아니라면 그다지 문제가 심각하지 않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특정한 계층과 집단만을 위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할때 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대통령님은 친일파를 옹호하시기 위해서 있지도 않았던 용서라는 말을 끄집어 내셨지만 우리는 일본으로 부터 어떠한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용서한 기록도 기억도 없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님은 친일파로 인정되는 몇사람을 위해 일본까지 용서했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일본을 용서했으니 친일파도 굳이 다질 필요가 없는 뜻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님의 사견을 공론으로 내세울 필요가 없으시다.

이명박 이라는 개인이 일본이나 친일파에 대해 깊은 애정이 있으시고 정이 담뿍 담기신 마음을 가지셨을지 몰라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그에게 이명박 개인의 생각들을 국민 모두가 그에게 자신들의 생각과 역사관까지 허락하고 위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아야 한다.

 

일본의 어느 호로새끼가 했던 말이 왜 화가 나지 않을까?

"병신(でき-そこない)" "병신을 이웃하고 사는 것이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