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희빈 (권력을 배후에서 조종한 궁중의 요부)
장희빈은 요부의 전형으로 각인돼 왔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의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녀는 원래 궁중의 나인으로 들어갔으나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아들 경종을 낳았다.
이후 희빈에 올라 중전 민씨와 치열한 라이벌전을 벌이게 되는데,
육감적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숙종을 독차지한다.
이에 중전 민씨는 빼앗긴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포커페이스에 능한 희빈의 계략에 말려들어 숙종의 미움만 사게 된다.
결국 그녀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숙종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남기게 되고
이를 기회로 희빈 세력들의 대공세를 받아 폐비가 되고 만다.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희빈은 이때부터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되지만,
6년 뒤 전세가 역전되어 민씨가 복귀하고 다시 희빈으로 강등 된다.
희빈은 나중엔 중전을 저주했다는 죄로 자진하라는 숙종의 명을 받지만
악이 받친 나머지 "내가 왜 죽는데?"를 외치며 어명을 수차례 거부하게 된다.
결국 열 받은 숙종이 직접 사약을 먹여 그녀를 아웃시켜야 했다.
[출처] 스포츠 조선 원문보기
2. 장녹수 (연산군을 몰락으로 이끈 팜데렐라)
장녹수의 아버지는 충청도 문의현령을 지낸 장한필이고 어머니는 첩이었다.
이 때문에 녹수는 성종의 종제인 제안대군의 노비로 살아야 했다.
노비라는 신분적인 한계, 그리고 첩의 자식이란 것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몸을 파는 일도 했고 제안대군의 노비와 결혼해 아들을 낳기도 했다.
녹수는 그렇게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으나 묘한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가무(歌舞)를 비롯한 예술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겸비하여 그 소문이 자자했다.
연산군은 그 소문을 듣고 녹수를 입궐시켜 1503년에 숙용에 봉하였다.
그녀는 왕의 총애를 업고 오빠 장복수와 그의 아들을 양인의 신분으로 올려 놓기까지 한다.
그러나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으며,
이는 연산군이 몰락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결국 그녀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녹수는 연산군이 폐위된 후, 반정군들에게 붙잡혀 거리에서 참형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에 돌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3. 어우동 (조선을 경악시킨 희대의 음녀)
어우동은 조선 성종 때 방탕한 생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스캔들 메이커다.
어을우동이라고도 불리며 성적인 매력과 자유분방한 생활로 조선 사대부들을 농락했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평소부터 음탕하여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밤이면
이부자리에 항상 외간 남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욕정을 채웠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의 음란함을 물려받았는지 어우동 또한 결혼과 동시에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왕족인 이동의 아내가 되었으나, 집을 방문한 은 세공업자를 건드리게 된다.
이것이 곧 발각되어 기생과 놀아나고 있던 남편에게 소박을 맞게 된다.
졸지에 과부가 된 그녀는 당돌한 하녀의 "세상에 널린게 남자"라는 말에 혹하여
사헌부 아전 오종년, 왕족인 이난과 이기를 비롯해 수십 명의 조관 및 유생을 후리고 다녔고,
갓 과거에 급제한 순진한 홍창마저 건드려 그를 밤문화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것마저 시시해지자 그녀는 길가는 남자들을 헌팅하여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이 소문을 들은 이웃의 마당쇠마저 그녀를 협박하여 쉽게 정을 통하게 된다.
그렇게 타락의 끝을 달리던 어우동은 왕족 이난의 간통죄에 휘말려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그녀는 풍기문란 죄로 하녀와 함께 목이 졸리는 형벌을 받았다.
반면, 그녀와 질펀하게 놀아났던 남자들은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거나
벼슬을 파직당하는 처벌에 그쳐 어우동에 비해서는 매우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원래의 직책을 되찾았다고도 한다.
[출처] 도현신 (타메를랑님) - 한국사 악인열전
4. 유감동 (조선을 대표하는 포르노그라피)
유감동은 조선 세종 때 남자 40여 명과 간통한 죄로 처벌 받은 여자이다.
그녀는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평강현감인 최중기(崔仲基)와 결혼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양갓집 규수답게 남편을 섬기며 조강지처로 살고자 했지만
얄궂은 운명은 그녀를 가만놔두지 않았다.
어느 날, 거리에서 납치되어 무뢰배 두목 김여달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다.
이때 그녀는 뜻하지 않게 자신 안에 숨겨져왔던 쾌락의 본능을 깨닫게 되는데,
이후부터 마치 정신줄을 놓은 듯 김여달을 비롯한 사내들의 품을 찾았다.
나중에 남편 최중기가 무안 군수로 부임할 때 그녀를 데리고 갔는데,
남자를 잊지 못한 감동이 병을 핑계로 서울로 올라와 방종하게 굴자
이 소문을 들은 최중기가 그녀를 차버리게 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감동과 관계했던 남자는 40명이 넘었으며, 그 대부분이 양반이었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은 대부분 간통의 경과나 상대 남성에 대한 치죄보다는
“간통한 여인 감동”을 어떻게 치죄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감동은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하여 개가한 자’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유감동이 최중기와 부부로 살 적에 김여달과 간통했던 바,
후에 남편과 함께 자다가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달아나 김여달에게 갔다.”라고 하였다.
한편 감동과 간통한 40여 명 가운데 20명이 처벌을 받았는데,
유감동이 음녀라는 이유로, 먹물로 죄명을 문신으로 새기는 자자형(刺字刑) 및
곤장, 태형, 외방부처, 파면 등 감동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다만 비접(避病)하러 가던 유감동을 강간, 폭행, 위협, 공갈한 김여달에 대해서는
추후에 극형 또는 중형을 청하는 일이 있었으나 그 결과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1427년 유감동은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되어 변방의 노비로 쫓겨났다.
1년 후에는 그녀의 천역(험한 일)이 면제되어 먼 지방에 안치(거주제한)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독방에 감금되는 수준이라 고통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안치(安置)는 귀양이라는 형벌보다 더 가중된 경우다.
안치는 귀양을 간 지역에서 또 다시 거주제한을 받는 형벌이다.
이것은 왕족, 고위관직자, 현직자 등에게 적용된 무거운 형벌이었다.
안치되는 곳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그 죄에 따라
위리안치(圍籬安置), 천극안치(栫棘安置), 가극안치(加棘安置)로 나뉘었다.
위리안치는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가두는 형벌로,
대개 탱자나무가 많은 전라도 연해의 섬으로 귀양간 죄인에게 적용했다.
천극안치는 죄인이 사는 방에 다시 이중으로 가시 울타리를 쳐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한 형벌이며,
가극안치는 천극안치보다 심한 형벌로 가시 울타리를 더 친다는 뜻이다.
[출처] 위키백과
5. 논개 (치명적 유혹으로 왜장을 수장시키다)
1574년 논개는 양반가문의 규수로 태어났으나 불운한 운명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자 숙부가 그녀를 이용해
김풍헌의 민며느리로 보낸다는 약조를 하고 금품을 받고 도망을 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논개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데리고, 친청으로 피했다가 체포된다.
이후 장수 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이 열리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돌아갈 곳이 없는 관계로 모녀는 침방관비를 자청했다.
말이 침방관리지 이 일은 사실 양반들의 공공연한 첩이나 다름없다.
17세에 이르러 최경회의 첩실이 된 그녀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나선 최경희의 의병 모집과 군사훈련을 열성으로 뒷바라지했다.
하지만 진주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고 최경희가 순국하자 그녀는 복수를 다짐한다.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진한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는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로 올라갔다.
곱게 단장한 그녀의 모습에 적장들은 눈을 떼지 못한채 넋이 나갔지만,
그 바위 아래가 깊은 강물이라서 감히 접근을 못하고 침만 삼켜야 했다.
그 때,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논개가 야릇한 미소로 맞이하니 적장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오늘 밤 어떻소?" 적장이 논개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자,
이를 신호로 그녀는 적장을 끌어안고 깊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치명적인 유혹에 이끌려 하룻밤의 쾌락을 꿈꾸었던 게야무라는
자신의 운명조차 가늠하지 못한채 그렇게 검은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조국과 지아비의 복수를 결행한 논개의 숭고한 희생은 어사인 유몽인을 감동시켜
1621년 편찬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순국열사로 기록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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