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펌)홍명희와 ‘임꺽정’을 다시 생각하며

깜보입니다 2010. 11. 20. 10:09
단풍잎이 곱게 물든 지난 10월30일 가을날 아침 가벼운 여행 채비를 하고서 충북 괴산의 순국지사 홍범식 선생의 고택이자 그의 아들 벽초 홍명희(1888~1968)의 생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날 오전 벽초의 생가 방문에 이어 오후엔 청주문화원에서 ‘제15회 벽초 홍명희 문학제’가 열렸다.

“나는 학자도 소설가도 아니다”라는 벽초의 단호한 발언은 자신은 작가적 성공이나 명망을 떠나 ‘문학과 삶의 일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뿐이라는 결곡한 뜻을 품고 있었다. 곧 문학은 작가가 자기 생활과 사회 현실 속에서 부단히 성찰하고 스스로를 변혁시키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행위의 한 방편임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날 ‘임꺽정 다시 읽기’라는 제하의 문학강연을 통해 비평가 염무웅 교수는 ‘성찰적 인간으로서의 벽초의 작가됨’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벽초에게 ‘작가됨’이란 무엇인가? 나름의 인생 역정을 통해 벽초가 도달한 ‘작가관’은 독특하다면 아주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계급적 출신과 성장 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자기 성격과 삶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일이란 엄청난 고난에 맞서는 엄격한 자기반성과 각고의 극기 과정이 전제되며, 동시에 그 극복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작가는 단지 이지(理智)의 문학에 머물지 않는 독특한 자기 ‘혼’의 문학을 얻게 된다는 점.

벽초는 쉰 나이에 “독특한 혼에서 흘러나오는 독특한 내용과 형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일시 관심되던 프로문학도 이러한 산 혼에서 우러나오는 문학이 아니면 문학적으로 실패할 것은 정한 일입니다”(<문학청년들이 갈 길>, 1937)라고 문학적 속내와 신념을 피력한 바 있다.

해방 후 정치노선으로는 민족통일노선 위에 섰고 중도노선의 진보정당을 주도한 벽초이지만, 그의 작가됨의 고뇌 혹은 문학사상적 고뇌의 원천이자 귀착은, 염 교수 강연 내용대로, “외부의 사상적 척도에 좌우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각성에 있었다.

이는 단지 ‘프로문학의 교조적 도식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넘어, 벽초가 작가로서의 자기 내면에 깃든 순정한 혼의 부름을 중히 여기고 이와 함께 이 땅에 면면히 유전되어 온 민족혼을 이끌어 이를 작품으로 남기는 것을 작가적 목표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이윽고 “조선 정조(情調)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임꺽정전을 쓰면서>, 1933)라 하여 <임꺽정> 집필 동기를 명확하게 밝히게 되는 것이다.

벽초에게 ‘조선 정조’니 ‘조선 혼’이란 것은 초역사적인 관념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 근대문학기 최고의 걸작 <임꺽정>이 스스로 증거하듯이, 오히려 ‘산 혼’ 혹은 ‘조선 혼’이란 이 땅의 서민 대중들의 삶에 내재되어 작동하는 건강한 생활력과, 침략적 외세와 온갖 사회적 차별과 부당한 권력과의 처절한 싸움 속에서 형성된 민중적 정신력에 깊이 흡착한 신명(神明) 혹 신기(神氣)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민족 비운의 합방 100년 그리고 근대문학 개화(開花) 100년여 동안 한국 문학의 근대성은 철저히 외래적 척도와 서구 이론에 의한 것이었다. 유서깊은 ‘산 혼’과 ‘조선 혼’의 문학성은 서구적 근대성에 한참 못미치는 불합리하고 낡은 것으로 폄하되곤 하였다.



적어도 ‘한국 문학에서 근대성의 척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있다면, 이날의 ‘벽초 문학제’가 지닌 소중한 의미가 더욱 절실히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