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스크랩] 한국인의 죽음 이해: 죽음, 또 다른 삶

깜보입니다 2012. 1. 27. 11:42

준비하고 맞이하는 죽음
흔히들 죽음이란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두려운 일로서, 죽음과 함께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산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여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며, 이른바 상장례는 죽음을 확인하고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 분리, 처리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죽음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관행이나 상장례를 보면 이와는 다른 태도가 발견된다.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준비하고 맞이할 것으로 여긴다. 한국사회의 죽음 관련 관행의 하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그들의 가족이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결혼식을 앞둔 젊은 남녀처럼 죽음을 준비한다. 묏자리를 미리 구해놓기도 하며, 수의도 미리 마련한다. 자식들 역시 나이가 많은 부모를 위해 그러한 준비를 해드리는 것을 효도로 여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인들은 자손들과 죽은 뒤의 일처리 등에 대해 상의하기도 한다. 가족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돌아가시면 제사상에 제일 좋아하시던 음식을 놓아 드리겠다?는 말이 오고 가기도 한다. 이런 말에 노인들은 흐뭇해한다. 이러한 관행은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이나 그 자식들에게 죽음은 금기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축제의 자리인 상갓집
죽음을 단순히 회피와 금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한국 사회의 상갓집 풍경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상갓집은 어두움과 슬픔이 짓누르는 무겁고 엄숙하기만 한 자리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호상好喪의 경우, 상갓집은 축제의 자리였다. 가족과 친지, 마을사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기고 춤과 놀이가 행해졌다. 심지어는 ?상주를 웃겨야 잘 하는 문상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상장례 공간의 변화, 살아가는 일의 분주함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어떤 외국인이 그런 상갓집에 들어섰을 때 상갓집인지 잔칫집인지를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상갓집의 축제적 분위기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긴 역사를 갖는다. 멀게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장송葬送에 가무歌舞를 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부모의 장례 때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피리를 불면서 애통해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풍경은 각 지방에서 발인 전날에 행해졌던 손모듬, 대도름, 댓도리, 생여도듬, 다시래기 등의 상여놀이를 통해서 이어져왔다. 상여놀이는 출상 전날에 상여꾼들이 운구준비를 위해 발과 호흡을 맞출 겸 빈 상여를 메고 노는 놀이인데, 상갓집을 흥겨운 놀이판 분위기로 바꿔 버린다. 한국의 전통적 상장례에서는 축제적 분위기가 자연스러웠음을 말해준다. 그것이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전승되어 왔다는 사실은 죽음이 존재의 끝이나 소멸이 아닌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라는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죽음 : 새로운 존재의 시작
한국인이면 누구나 거치는 전통적인 상장례는 죽음을 확인한 뒤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에게서 분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자의 존재를 변화시켜 조상의 세계에 좌정시킨다. 그리고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후손들과 교류한다. 전통 상장례에서(육체적) 죽음은 혼(넋)과 육체가 분리됨을 의미하며, 이는 보통 호흡 즉 숨의 끊김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상장례 전 절차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상장례 전 과정은 주검을 처리하는 절차(이른바 장례식)와 혼을 처리하는 절차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하면, 혼과 육체의 분리 즉 죽음을 확인하고, 주검을 처리한 다음에 영을 모시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발인 때의 장례행렬 역시 혼을 모시는 영여靈輿와 혼이 빠져나간 육체를 모시는 상여喪輿로 구분한다. 이는 요즘의 장례행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즘의 장례행렬은 영정을 실은 승용차와 시신을 실은 장의차로 이뤄지는데, 승용차는 영여, 장의차는 상여 역할을 한다.


 

주목할 것은, 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육체는 장지에 매장되어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데, 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혼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매장 이후 탈상까지의 상장례 절차는 육신을 장지에 묻고 집으로 돌아온 죽은 자의 혼에 대한 절차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한국의 전통 상장례는 죽은 사람을 조상으로 새롭게 위치 짓는다. 즉 살아있는 존재(혼과 육체의 소유자)에서 과도기를 거쳐 몸 없이 영혼만을 가진 죽은 사람의 세계(조상의 세계)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상장례를 통해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는 가족들과 여전히 관계를 유지한다. 돌아가신 조상의 신주를 모신 유교식 사당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집안에 조상을 모시는 공간인 사당이 있고 그것이 가정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집이란 조상과 후손이 함께 사는 장소이며, 조상 역시 살아있는 후손과 함께 가족의 성원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조상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았을 때처럼 가족공동체의 성원으로 남아있다. 민간의 가정신앙에서도 조상은 집안 신의 하나로서 조상단지나 그 외 다른 형태로 집안에서 모셔진다. 또한 기제忌祭, 시제時祭, 차례茶禮를 비롯한 다양한 유교제사를 통해 끊임없이 살아있는 후손들과 만난다


 

. 이런 점에서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후손들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후손들과 공존하며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죽은 사람은 그저 죽어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a living dead)?이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죽음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 죽음은 삶과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았다. 유교식 사당이나 가정신앙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집은 산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같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또한 죽은 사람은 사후에도 여전히 산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전통 상장례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죽음의 처리는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이뤄진다. 한 사람의 죽음을 판단하고 상장례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삶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병원의 의사나 장례식장의 장례 예식사, 각 종교의 사제들이다.


 

반면에 한국 전통사회에서 죽음의 처리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삶의 공간인 집에서, 함께 삶을 살아왔던 가족이나 마을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다. 망자는 자신이 기거하던 방에서 숨을 거두고, 자신의 삶의 공간이었던 집과 마을에서 진행되는 상장례를 거쳐 조상이 된 후 다시 가족들과 통합된다. 이처럼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처리하는 전통 상장례는 자연스럽게 죽음과 삶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상을 당한 가족만이 아니라 온 마을사람들이 참여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던 상장례 과정 역시 죽음이 누구나 거치는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전 한국사회에서 한 개인의 죽음은 당사자와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속해 있는 마을과 같은 지역공동체 전체의 일이었다.


 

이처럼 죽은 자가 살았던 삶의 공간인 집과 마을에서 공동체적 방식으로 이뤄지던 한국의 전통상장례는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죽음이 삶의 자연스런 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전제한다. 반면에 병원이나 장례식장 같은, 일상의 삶의 공간이 아닌 죽음의 처리를 위해 설정된 별도의 기능적 공간에서 망자의 삶과는 무관한, 장례 업무를 전담하는 기능적 인물에 의해 처리되는 오늘날의 상장례 방식은 삶과 죽음의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이렇듯 전통적인 죽음문화의 기저에는 죽음이 존재의 소멸이나 무화武火가 아닌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라는 이해가 놓여 있다. 죽음과 함께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양태가 변화할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그 관계를 지속해 간다. 죽음은 완전한 떠나감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즉 조상으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운 것도, 외로운 것도 아니다.


 

글·이용범 전북대학교 HK연구교수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민속박물관, 연합콘텐츠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한국의재발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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