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지위 변천사
몇 년 전 우리나라 최초 여왕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선덕여왕’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왕의 시대를 연 덕만과 정사를 쥐락펴락한 미실은 드라마를 이끄는 중심축이었습니다. 여기서 여성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여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신라시대에서 과부의 재가를 금지한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지위는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여성상위 시대’란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행정안전부(PRISM) (http://www.prism.go.kr)'와 '정부출연 연구기관 지식정보 DB (http://www.ikis.re.kr)'의 도움을 받아 여성의 지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여성의 지위 변천사
> 신화 속의 여성 : 웅녀와 유화
단군 신화에서 환인의 지시에 따라 쑥과 마늘만 먹고 햇빛을 보지 않은 곰은 ‘웅녀’로 거듭납니다. 이후 웅녀는 환인과 함께 단군왕검을 낳습니다. 웅녀는 단군을 출산한 신모적 존재입니다. 환인과 웅녀의 만남은 이주민과 토착민이 별 다른 충돌 없이 결합해 고조선이 건국됐음을 암시합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하백의 딸 유화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와 함께 주몽을 낳습니다. 유화는 주몽에게 나라 건국이란 사명을 깨워주고, 비둘기를 날려 곡식의 씨앗을 전해줍니다. 이는 유화가 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농업신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유화는 고구려 멸망 때까지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신라시조 혁거세의 왕비 알영, 백제의 시조 비류와 온조를 낳은 소서노도 신의 아들을 낳은 존재입니다. 이 같은 건국신화에서 여성은 대지의 신, 물의 신, 농업의 신으로 등장해 영웅을 낳고 기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는 출산과 육아를 맡았던 여성 고유의 역할이 신화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더불어 농경이 시작되면서 여성이 농업을 관장했음을 뜻합니다.
> 통일신라 시대의 여성 : 남아선호 사상과 삼종지도의 등장
통일신라는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제도를 개편했습니다. 유교는 남성과 여성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부덕과 도리를 강조한 탓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는 제약이 따랐습니다.
통일신라에서는 다음 왕위 계승자로 ‘태자’를 세워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때문에 왕실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생겨났고, 경덕왕의 왕비인 삼모부인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당합니다. 또 신라 말기의 헌안왕은 딸만 둘이었는데 사위에게 왕위를 넘겼습니다. 헌안왕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업적을 낮게 평가하진 않았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표현하며 여왕의 즉위를 부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김유신의 아내인 지소부인이 ‘삼종지도’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삼종지도는 여성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 사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의 도리입니다. 이는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통용된 유교 논리에 따르면 군주와 아버지, 남편은 명령을 내리는 존재고, 신하와 아들, 아내는 그 명을 받아 섬기는 존재입니다. 당시는 이런 상하관계를 바꿀 수 없는 질서로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일은 남성의 몫으로 여겨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 고려시대의 여성 :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동시에
고려 성종 때의 유학자 최승로는 “유교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불교는 마음을 닦는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를 모두 아우른 고려의 특징을 잘 드러낸 표현으로, 여성들의 지위와 생활은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모두 받았습니다.
고려는 여러 제도와 법을 통해 유교이념을 장려했습니다. 국가에서는 효자와 의부, 절부를 표창했고, 여성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남편에 대한 정절을 평가받았습니다. 효행을 칭찬으로 장려했다면 불효는 처벌로 응징했습니다. 법률에 따르면 여성이 남편의 조부모, 부모에게 욕설을 했을 때는 도형 2년에 처하고, 구타를 하면 목을 매 죽였으며, 상처를 입히면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이는 남성에게도 적용되었지만 욕설에 대한 규정은 없어 여성에 대한 규제가 더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고려의 여성들은 결혼 전에는 딸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결혼 뒤에는 며느리로서 시부모에게 효도할 것이 요구됐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 모두 장려하는 사안이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결혼을 필수사항으로 여겼습니다. 결혼은 부모 봉양과 조상의 제사를 지낼 아들을 얻는데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불교에서는 결혼을 개인의 일로 여겨 강요하거나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효도할 것으로 권장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를 모신다거나 결혼 한 뒤에도 친정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사례입니다. 인종의 외손녀인 왕영의 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겼고, 김묘의 처 여흥군부인 민씨는 외동딸로 결혼 뒤에도 친정에서 살며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의 영향이 동시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부모가 죽은 뒤 명복을 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윤회사상의 영향으로 살아서 착한 일을 못한 사람이라도 죽은 뒤 자손들의 선행에 의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사찰에서 부모의 명복을 비는 것을 효행의 실천으로 봤습니다. 이처럼 고려 시대에는 사찰에서 지내는 재가 중요했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아들의 중요성이 조선시대보다는 덜했습니다.
> 조선시대의 여성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차이가 차별로
조선은 통치 이념으로 성리학을 내세우고, 남성을 중심으로 한 부계 가족 질서를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성리학은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새로운 유학입니다. 이는 공자의 유학이 성립된 후 1700년이 지난 시기로 원시 유학과는 차이점이 생겼습니다. 애초에 유학에서는 만물의 생성을 하늘과 땅의 원리가 조화를 이룬 결과로 봤습니다. 이는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는 관점이 아니라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다름을 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과 땅의 높고 낮음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인식됐습니다. 남성의 권리나 지위를 여성보다 우위에 두어 존중하고 여성을 천시하는 ‘남존여비’ 사상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성리학은 적장자 위주의 가계 계승과 그를 바탕으로 한 제사의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로 인해 제사를 지내는 아들의 중요성이 커졌고, 딸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 딸이나 외손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장자를 제외한 아들에 대해서도 제사나 재산상에 있어서 차등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제사가 장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상속분도 더 많이 주게 됐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적인 윤리규범을 일반 생활 속에 정착시키기 위해 풍습까지 규제했습니다. 가장 먼저 여성들의 사찰 출입을 억제했습니다. 이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효과와 함께 부녀자의 행실을 규제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여성들의 의복도 유교적인 규정대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집밖을 나설 때는 얼굴을 가리고, 지붕이 있는 가마를 사용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 것도 이런 영향 때문입니다. 또 남녀 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으로 여성들은 3촌까지의 친척 이외 사람을 방문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조선의 지배층은 여성의 생활을 철저히 폐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문 밖을 나서고 외부 사람을 만나면 정절을 잃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조선은 가족질서를 굳건히 하기 위해 여성의 재혼을 금지했습니다. ‘과부재가금지법’은 198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여성들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존재했습니다.
> 일제식민지의 여성 :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법적 무능력자’
일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호주제를 도입해 효율적인 지배를 꾀했습니다. 호주는 혼인, 입양, 입적, 제적과 같은 행위에 대한 동의권, 허가권, 재판권을 지니고 있어 가족에 대해 강력한 가부장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혈통을 이어가는 호주제의 정착으로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약화되었고 남성에게 종속적인 지위가 고착되었습니다.
일제는 1912년 강력한 가부장권과 남녀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민사령’을 공포합니다. 이에 따르면 아내는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일, 소송, 상속의 승인과 포기 등의 행위를 할 때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직업을 갖거나 계약을 할 때도 호주인 남편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여성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법적인 무능력자로 전락했습니다.
일제는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고 피식민 집단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를 위해 식민 통치에 순응하고 가부장적 사회에 적합한 여성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제는 교육을 통해 정숙, 온순한 덕을 함양한 식민지 여성을 양성하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가사, 재봉, 수예 등 실기 위주의 교과에 많은 시간을 배당했습니다. 또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만 규정해 남성의 보조자로 여겼습니다.
>> 세계 각국 여성의 지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제정됐습니다.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억압받던 여성들은 권리확보와 지위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참정권을 쟁취하고, 호주제를 폐지시켰습니다. 남녀불평등이 개선되는 추세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 한국 여성의 지위 : 성 평등지수 61.1점
2010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한국의 성 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성평등 지수는 61.1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0.0(불평등)에서 시작해 평등수준이 높아지면 지수도 높아지는 것으로 100.0(평등)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2005년 57.6, 2008년 61.1로 증가했지만, 2008년 이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성 평등을 조사한 세계경제포럼(WEF)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35개국 중 107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1인당 국민총소득을 바탕으로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45개국 가운데 41위를 차지했습니다.
> 사회주의 혁명이후 여권신장, 중국
과거 중국은 여성을 가부장적 질서에 종속시키려는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유교의 발상지로서 부계사회를 확립했고, 정절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호주는 적장자 계승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법가는 호주와 가부장의 절대적인 지위를 옹호했습니다. 여성은 결혼할 자유와 이혼할 권리도 없었으며,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일체의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부부간 싸움이 났을 때 남편이 아내를 때려 상처를 내도 칼이나 무기를 갖고 한 것이 아니라면 무죄로 인정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남녀지위는 비교적 평등하고 여권이 많이 신장됐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이후 구체제의 유산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전통 가정의 폐습을 없애고, 여성해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생긴 결과입니다. 사회주의와 함께 시작된 중국의 여권신장은 여성의 경제권 인정, 봉건 결혼제도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의 지위 변화는 가족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신현모양처’는 예전처럼 전통적으로 복종하는 게 아닌 가족 내 정서관리 기술에 능통한 여성을 지칭합니다.
>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 아이슬란드
세계 최초 여성대통령 배출, 세계 최초 여성 동성애 총리 집권. ‘여성들의 천국’ 아이슬란드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저절로 만들어 진 게 아닙니다. 1975년 남녀 임금차별에 부당함을 느낀 여성들은 급진적 여성단체 ‘붉은 스타킹’ 주도로 가정과 직장에서 하루 파업을 선언합니다. 파업에는 아이슬란드 전체 여성인구 90%가 참여해 정치색과 계급을 뛰어넘어 여성의 지위 향상이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남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2010년 남녀 소득 차이에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은 대형 상점과 연계해 일시적으로 여성 소비자들에게 소득 차이만큼 할인을 해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쌓인 덕분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2012)와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2011)가 조사한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는 모두 아이슬란드였습니다. 이에 대해 뉴스위크는 “아이슬란드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오래 전부터 여권 보호에 힘써왔다”고 설명했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 : 운전금지와 여행제한 갈 길 먼 여권신장
사우디 여성들의 지위는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이슬람권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중 가장 완고한 나라가 사우디입니다. 사우디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는 스스로 온 몸을 가려야 하고,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울릴 수 없으며, 허가 없이는 여행할 수 없는 등 많은 규제에 묶여 있습니다.
사우디에서 변화의 조짐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사우디 여성들은 운전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운전금지 철폐 운동을 이끄는 마하 알-카타니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남성후견인법’이 바뀌어 여성들은 2015년부터 남성의 허락 없이 참정권을 행사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우디 여성들에게 인터넷은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인터넷 사용자 중 3분의 2가 여성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있습니다. 인터넷은 사우디 여성들에게 외부와 자유롭게 접촉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사우디에서 여권신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요인
> 교육권, 배울 수 있는 권리
여성의 교육권은 그 사회의 여성관이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남존여비 사상과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일부 양반계급에서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교육을 받은 사례가 있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사회 활동 대신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부여받은 여성은 가사노동과 길쌈, 바느질 등을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교육은 1886년 설립된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정신, 배화, 숭의 등의 여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1895년 고종은 교육의 중요성을 밝힌 교육조서를 내렸고, 여기서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입학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편 1919년 3.1 운동에서는 이화학당 출신의 유관순을 필두로 여학교 학생들이 주역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제시대 여성의 취학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또 학교에 간다고 하더라도 ‘식민지배에 순종하는 여성’을 양성하는 교육을 배울 따름이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학제의 개혁으로 여성의 교육기회는 대폭 늘어났고, 이와 함께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습니다.
> 가족의 형성과 변화 : 가부장권 확립과 여성지위 하락
가족보다는 원시공동체였던 고대사회에서는 남녀노소 모든 사회구성원이 생산노동에 종사했고, 제도적으로 남녀를 차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는 신비로운 능력으로 여겨졌고, 제천의식의 집행자로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웅녀와 유화, 소서노 등이 신모이자 농업신으로 추앙받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급증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남성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고, 공동체에는 계급이 발생했습니다. 남성은 우월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능력만큼 처를 소유했고, 이는 권력과 부의 척도가 됐습니다. 그 결과 여성은 공동체의 일원에서 가족의 구성원이 됐고, 권력 관계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 남녀를 차별하고 여성을 억압한 것은 주자학이 도입되던 고려 말 조선초기였습니다.
조선은 부계가족을 이상으로 여겨 기존의 사회 제도를 이에 맞게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조선 초기까지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으나 점차 시집살이가 일반화 됩니다. 이후 상례, 제례, 재산상속 등에서 여성의 권리는 대폭 축소됐습니다. 제사 모시는 아들의 중요성이 커졌고, 여성의 지위는 낮아집니다. 칠거지악, 삼종지도, 남존여비 등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규범이 생겨났고, 여성은 외출제한 등 다양한 규제를 받았습니다.
>> 영화로 보는 여성의 지위
> 위대한 국모이자 독재자, ‘에비타(Evita, 1996)’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바는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 출신으로 사회적 차별과 무시를 극복하고 영부인의 자리에 오릅니다. 영부인 에바는 ‘페론주의’를 내걸고 외국자본 추방, 기간산업의 국유화, 노동자 처우개선,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여성 시민적 지위 개성, 이혼의 권리를 명시한 가족법 추진, 여성의 공무담임권 획득 등의 업적을 남깁니다. 특히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데 힘쓴 에바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성녀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에바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수많은 지식인과 귀족들을 탄압했고, 자신과 남편의 우상화 작업에 착수합니다. 또 에바가 추진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입니다. 에바 페론은 성녀이자 악녀이며 위대한 국모이자 독재자라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여성입니다.
> 억압으로부터의 탈출,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
‘델마와 루이스’는 가정주부인 델마와 웨이트리스인 루이스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억압하던 남편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생각에 델마는 낯선 남자와 춤을 추게 되고, 남자는 술에 취한 델마를 강간하려 듭니다. 델마를 찾아나선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총을 쏴서 남자를 살해합니다. 이후 여행은 탈주극이 됩니다. ‘델마와 루이스’는 두 여성이 연대를 통해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내용을 유쾌하게 그려 많은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 금지된 자가 노래하는 자유, ‘밴디트(Bandits, 1997)’
독일 영화 ‘밴디트(금지된 자)’는 여자 탈옥수 4명의 록밴드 이야기입니다. 폭력전과자 루나, 결혼사기범 엔젤, 살인미수범 마리, 남편 살해범 엠마는 한 팀을 이뤄 자유에 대한 열망을 노래합니다. 경찰의 추격을 받는 신세지만 ‘밴디트’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단순한 탈주범이 아닌 자유와 젊음을 대변하는 상징이 됩니다. 1997년 독일 개봉당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1998년 국내에서 개봉돼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 참고문헌 및 사이트
ㅇ 『우리 여성의 역사』.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지음, 청년사, 1999
ㅇ 머니투데이 (http://bit.ly/GR413A) (2011.11.02)
ㅇ 한국일보 (http://bit.ly/ogrBc8) (2011.10.05)
ㅇ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1155)
ㅇ 네이버 블로그 - 은 (http://bit.ly/GR3Wgr)
ㅇ 네이버 블로그 - 빛들 (http://our_colors.blog.me/110131307891)
ㅇ 3·8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http://38women.co.kr)
>> 여성의 지위 변천사
> 신화 속의 여성 : 웅녀와 유화
단군 신화에서 환인의 지시에 따라 쑥과 마늘만 먹고 햇빛을 보지 않은 곰은 ‘웅녀’로 거듭납니다. 이후 웅녀는 환인과 함께 단군왕검을 낳습니다. 웅녀는 단군을 출산한 신모적 존재입니다. 환인과 웅녀의 만남은 이주민과 토착민이 별 다른 충돌 없이 결합해 고조선이 건국됐음을 암시합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하백의 딸 유화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와 함께 주몽을 낳습니다. 유화는 주몽에게 나라 건국이란 사명을 깨워주고, 비둘기를 날려 곡식의 씨앗을 전해줍니다. 이는 유화가 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농업신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유화는 고구려 멸망 때까지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신라시조 혁거세의 왕비 알영, 백제의 시조 비류와 온조를 낳은 소서노도 신의 아들을 낳은 존재입니다. 이 같은 건국신화에서 여성은 대지의 신, 물의 신, 농업의 신으로 등장해 영웅을 낳고 기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는 출산과 육아를 맡았던 여성 고유의 역할이 신화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더불어 농경이 시작되면서 여성이 농업을 관장했음을 뜻합니다.
▶ 이만익 作, <웅녀도> 출처: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 ☞ 바로가기 |
> 통일신라 시대의 여성 : 남아선호 사상과 삼종지도의 등장
통일신라는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고 통치제도를 개편했습니다. 유교는 남성과 여성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부덕과 도리를 강조한 탓에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는 제약이 따랐습니다.
통일신라에서는 다음 왕위 계승자로 ‘태자’를 세워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때문에 왕실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생겨났고, 경덕왕의 왕비인 삼모부인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당합니다. 또 신라 말기의 헌안왕은 딸만 둘이었는데 사위에게 왕위를 넘겼습니다. 헌안왕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업적을 낮게 평가하진 않았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표현하며 여왕의 즉위를 부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김유신의 아내인 지소부인이 ‘삼종지도’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삼종지도는 여성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 사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의 도리입니다. 이는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통용된 유교 논리에 따르면 군주와 아버지, 남편은 명령을 내리는 존재고, 신하와 아들, 아내는 그 명을 받아 섬기는 존재입니다. 당시는 이런 상하관계를 바꿀 수 없는 질서로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일은 남성의 몫으로 여겨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 고려시대의 여성 :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동시에
고려 성종 때의 유학자 최승로는 “유교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불교는 마음을 닦는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를 모두 아우른 고려의 특징을 잘 드러낸 표현으로, 여성들의 지위와 생활은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모두 받았습니다.
고려는 여러 제도와 법을 통해 유교이념을 장려했습니다. 국가에서는 효자와 의부, 절부를 표창했고, 여성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남편에 대한 정절을 평가받았습니다. 효행을 칭찬으로 장려했다면 불효는 처벌로 응징했습니다. 법률에 따르면 여성이 남편의 조부모, 부모에게 욕설을 했을 때는 도형 2년에 처하고, 구타를 하면 목을 매 죽였으며, 상처를 입히면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이는 남성에게도 적용되었지만 욕설에 대한 규정은 없어 여성에 대한 규제가 더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고려의 여성들은 결혼 전에는 딸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결혼 뒤에는 며느리로서 시부모에게 효도할 것이 요구됐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 모두 장려하는 사안이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결혼을 필수사항으로 여겼습니다. 결혼은 부모 봉양과 조상의 제사를 지낼 아들을 얻는데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불교에서는 결혼을 개인의 일로 여겨 강요하거나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효도할 것으로 권장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를 모신다거나 결혼 한 뒤에도 친정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사례입니다. 인종의 외손녀인 왕영의 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겼고, 김묘의 처 여흥군부인 민씨는 외동딸로 결혼 뒤에도 친정에서 살며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의 영향이 동시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부모가 죽은 뒤 명복을 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윤회사상의 영향으로 살아서 착한 일을 못한 사람이라도 죽은 뒤 자손들의 선행에 의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사찰에서 부모의 명복을 비는 것을 효행의 실천으로 봤습니다. 이처럼 고려 시대에는 사찰에서 지내는 재가 중요했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아들의 중요성이 조선시대보다는 덜했습니다.
> 조선시대의 여성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차이가 차별로
조선은 통치 이념으로 성리학을 내세우고, 남성을 중심으로 한 부계 가족 질서를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성리학은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새로운 유학입니다. 이는 공자의 유학이 성립된 후 1700년이 지난 시기로 원시 유학과는 차이점이 생겼습니다. 애초에 유학에서는 만물의 생성을 하늘과 땅의 원리가 조화를 이룬 결과로 봤습니다. 이는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는 관점이 아니라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다름을 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과 땅의 높고 낮음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인식됐습니다. 남성의 권리나 지위를 여성보다 우위에 두어 존중하고 여성을 천시하는 ‘남존여비’ 사상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성리학은 적장자 위주의 가계 계승과 그를 바탕으로 한 제사의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로 인해 제사를 지내는 아들의 중요성이 커졌고, 딸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 딸이나 외손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장자를 제외한 아들에 대해서도 제사나 재산상에 있어서 차등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제사가 장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상속분도 더 많이 주게 됐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적인 윤리규범을 일반 생활 속에 정착시키기 위해 풍습까지 규제했습니다. 가장 먼저 여성들의 사찰 출입을 억제했습니다. 이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효과와 함께 부녀자의 행실을 규제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여성들의 의복도 유교적인 규정대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집밖을 나설 때는 얼굴을 가리고, 지붕이 있는 가마를 사용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게 된 것도 이런 영향 때문입니다. 또 남녀 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으로 여성들은 3촌까지의 친척 이외 사람을 방문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조선의 지배층은 여성의 생활을 철저히 폐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문 밖을 나서고 외부 사람을 만나면 정절을 잃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조선은 가족질서를 굳건히 하기 위해 여성의 재혼을 금지했습니다. ‘과부재가금지법’은 198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여성들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존재했습니다.
> 일제식민지의 여성 :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법적 무능력자’
일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호주제를 도입해 효율적인 지배를 꾀했습니다. 호주는 혼인, 입양, 입적, 제적과 같은 행위에 대한 동의권, 허가권, 재판권을 지니고 있어 가족에 대해 강력한 가부장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혈통을 이어가는 호주제의 정착으로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약화되었고 남성에게 종속적인 지위가 고착되었습니다.
일제는 1912년 강력한 가부장권과 남녀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민사령’을 공포합니다. 이에 따르면 아내는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일, 소송, 상속의 승인과 포기 등의 행위를 할 때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직업을 갖거나 계약을 할 때도 호주인 남편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여성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법적인 무능력자로 전락했습니다.
일제는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고 피식민 집단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를 위해 식민 통치에 순응하고 가부장적 사회에 적합한 여성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제는 교육을 통해 정숙, 온순한 덕을 함양한 식민지 여성을 양성하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가사, 재봉, 수예 등 실기 위주의 교과에 많은 시간을 배당했습니다. 또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만 규정해 남성의 보조자로 여겼습니다.
>> 세계 각국 여성의 지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제정됐습니다.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억압받던 여성들은 권리확보와 지위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참정권을 쟁취하고, 호주제를 폐지시켰습니다. 남녀불평등이 개선되는 추세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 한국 여성의 지위 : 성 평등지수 61.1점
2010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한국의 성 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성평등 지수는 61.1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0.0(불평등)에서 시작해 평등수준이 높아지면 지수도 높아지는 것으로 100.0(평등)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2005년 57.6, 2008년 61.1로 증가했지만, 2008년 이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성 평등을 조사한 세계경제포럼(WEF)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35개국 중 107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1인당 국민총소득을 바탕으로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45개국 가운데 41위를 차지했습니다.
▶ 세계 여성의 날 Korea 2012 홈페이지 메인 화면 출처: 세계 여성의 날 Korea 2012 홈페이지 ☞ 바로가기 |
> 사회주의 혁명이후 여권신장, 중국
과거 중국은 여성을 가부장적 질서에 종속시키려는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유교의 발상지로서 부계사회를 확립했고, 정절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호주는 적장자 계승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법가는 호주와 가부장의 절대적인 지위를 옹호했습니다. 여성은 결혼할 자유와 이혼할 권리도 없었으며,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일체의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부부간 싸움이 났을 때 남편이 아내를 때려 상처를 내도 칼이나 무기를 갖고 한 것이 아니라면 무죄로 인정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남녀지위는 비교적 평등하고 여권이 많이 신장됐습니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이후 구체제의 유산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전통 가정의 폐습을 없애고, 여성해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생긴 결과입니다. 사회주의와 함께 시작된 중국의 여권신장은 여성의 경제권 인정, 봉건 결혼제도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의 지위 변화는 가족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신현모양처’는 예전처럼 전통적으로 복종하는 게 아닌 가족 내 정서관리 기술에 능통한 여성을 지칭합니다.
>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 아이슬란드
세계 최초 여성대통령 배출, 세계 최초 여성 동성애 총리 집권. ‘여성들의 천국’ 아이슬란드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저절로 만들어 진 게 아닙니다. 1975년 남녀 임금차별에 부당함을 느낀 여성들은 급진적 여성단체 ‘붉은 스타킹’ 주도로 가정과 직장에서 하루 파업을 선언합니다. 파업에는 아이슬란드 전체 여성인구 90%가 참여해 정치색과 계급을 뛰어넘어 여성의 지위 향상이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남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2010년 남녀 소득 차이에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은 대형 상점과 연계해 일시적으로 여성 소비자들에게 소득 차이만큼 할인을 해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쌓인 덕분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2012)와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2011)가 조사한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는 모두 아이슬란드였습니다. 이에 대해 뉴스위크는 “아이슬란드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오래 전부터 여권 보호에 힘써왔다”고 설명했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 : 운전금지와 여행제한 갈 길 먼 여권신장
사우디 여성들의 지위는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이슬람권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중 가장 완고한 나라가 사우디입니다. 사우디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는 스스로 온 몸을 가려야 하고,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울릴 수 없으며, 허가 없이는 여행할 수 없는 등 많은 규제에 묶여 있습니다.
사우디에서 변화의 조짐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사우디 여성들은 운전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운전금지 철폐 운동을 이끄는 마하 알-카타니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남성후견인법’이 바뀌어 여성들은 2015년부터 남성의 허락 없이 참정권을 행사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우디 여성들에게 인터넷은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인터넷 사용자 중 3분의 2가 여성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있습니다. 인터넷은 사우디 여성들에게 외부와 자유롭게 접촉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사우디에서 여권신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요인
> 교육권, 배울 수 있는 권리
여성의 교육권은 그 사회의 여성관이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져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남존여비 사상과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일부 양반계급에서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교육을 받은 사례가 있었지만,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사회 활동 대신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부여받은 여성은 가사노동과 길쌈, 바느질 등을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교육은 1886년 설립된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정신, 배화, 숭의 등의 여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1895년 고종은 교육의 중요성을 밝힌 교육조서를 내렸고, 여기서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입학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편 1919년 3.1 운동에서는 이화학당 출신의 유관순을 필두로 여학교 학생들이 주역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제시대 여성의 취학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또 학교에 간다고 하더라도 ‘식민지배에 순종하는 여성’을 양성하는 교육을 배울 따름이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학제의 개혁으로 여성의 교육기회는 대폭 늘어났고, 이와 함께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었습니다.
▶ 이화학당 기숙사 전경 출처: 한국독립운동사 종합지식정보 ☞ 바로가기 |
> 가족의 형성과 변화 : 가부장권 확립과 여성지위 하락
가족보다는 원시공동체였던 고대사회에서는 남녀노소 모든 사회구성원이 생산노동에 종사했고, 제도적으로 남녀를 차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는 신비로운 능력으로 여겨졌고, 제천의식의 집행자로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웅녀와 유화, 소서노 등이 신모이자 농업신으로 추앙받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농업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급증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남성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고, 공동체에는 계급이 발생했습니다. 남성은 우월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능력만큼 처를 소유했고, 이는 권력과 부의 척도가 됐습니다. 그 결과 여성은 공동체의 일원에서 가족의 구성원이 됐고, 권력 관계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 남녀를 차별하고 여성을 억압한 것은 주자학이 도입되던 고려 말 조선초기였습니다.
조선은 부계가족을 이상으로 여겨 기존의 사회 제도를 이에 맞게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조선 초기까지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으나 점차 시집살이가 일반화 됩니다. 이후 상례, 제례, 재산상속 등에서 여성의 권리는 대폭 축소됐습니다. 제사 모시는 아들의 중요성이 커졌고, 여성의 지위는 낮아집니다. 칠거지악, 삼종지도, 남존여비 등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규범이 생겨났고, 여성은 외출제한 등 다양한 규제를 받았습니다.
▶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기능 '임신' |
>> 영화로 보는 여성의 지위
> 위대한 국모이자 독재자, ‘에비타(Evita, 1996)’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바는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 출신으로 사회적 차별과 무시를 극복하고 영부인의 자리에 오릅니다. 영부인 에바는 ‘페론주의’를 내걸고 외국자본 추방, 기간산업의 국유화, 노동자 처우개선,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인상 및 여성 시민적 지위 개성, 이혼의 권리를 명시한 가족법 추진, 여성의 공무담임권 획득 등의 업적을 남깁니다. 특히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데 힘쓴 에바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성녀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에바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수많은 지식인과 귀족들을 탄압했고, 자신과 남편의 우상화 작업에 착수합니다. 또 에바가 추진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입니다. 에바 페론은 성녀이자 악녀이며 위대한 국모이자 독재자라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여성입니다.
> 억압으로부터의 탈출,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
‘델마와 루이스’는 가정주부인 델마와 웨이트리스인 루이스가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억압하던 남편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생각에 델마는 낯선 남자와 춤을 추게 되고, 남자는 술에 취한 델마를 강간하려 듭니다. 델마를 찾아나선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총을 쏴서 남자를 살해합니다. 이후 여행은 탈주극이 됩니다. ‘델마와 루이스’는 두 여성이 연대를 통해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내용을 유쾌하게 그려 많은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 금지된 자가 노래하는 자유, ‘밴디트(Bandits, 1997)’
독일 영화 ‘밴디트(금지된 자)’는 여자 탈옥수 4명의 록밴드 이야기입니다. 폭력전과자 루나, 결혼사기범 엔젤, 살인미수범 마리, 남편 살해범 엠마는 한 팀을 이뤄 자유에 대한 열망을 노래합니다. 경찰의 추격을 받는 신세지만 ‘밴디트’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단순한 탈주범이 아닌 자유와 젊음을 대변하는 상징이 됩니다. 1997년 독일 개봉당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1998년 국내에서 개봉돼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 참고문헌 및 사이트
ㅇ 『우리 여성의 역사』.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지음, 청년사, 1999
ㅇ 머니투데이 (http://bit.ly/GR413A) (2011.11.02)
ㅇ 한국일보 (http://bit.ly/ogrBc8) (2011.10.05)
ㅇ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1155)
ㅇ 네이버 블로그 - 은 (http://bit.ly/GR3Wgr)
ㅇ 네이버 블로그 - 빛들 (http://our_colors.blog.me/110131307891)
ㅇ 3·8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http://38women.co.kr)
- 국가지식포털 객원기자 조은미 -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한국의재발견 원글보기
메모 :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집현전에서 기본과 창의를 찾다 (0) | 2012.04.20 |
---|---|
[스크랩] 식목일에서 찾는 전통과 역사 (0) | 2012.04.06 |
[스크랩] 조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새소리(소쩍새와 두견) (0) | 2011.10.14 |
[스크랩] 꽃 말 (0) | 2011.05.31 |
[스크랩] 전통건축색채를 통해서 보는 어울림의 가치와 의미 (0) | 2011.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