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통일신라 때 고운 최치운 선생이 만든 1000년이 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 숲, 상림공원이다. 상림공원의 짙은 숲 속 길을 걸으면 마음마저 상쾌해져 평안을 얻는다. 읍내 한 가운데 평지에 있어 오르고 내리는 기복이 없다. 상림공원 다음으로는 요즘 걷기 열풍과 함께 많이들 찾는 지리산 둘레길이 있다. 함양은 지리산 자락을 품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일부로 들어간 함양도 결코 나쁘지 않지만 함양만의 멋과 풍경을 오롯이 드러내기에는 선비길만한 곳도 없다.
함양군 사하면 거연정에서부터 지금은 불타 없어져 버린 안의면 옛 농월정까지 60km에 이르는 함양선비문화탐방로. 지금은 여덟 정자를 모두 볼 수 없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과 경모정 같은 정자가 화림동 계곡 곳곳에 세워져 있다.
거연정휴게소에서 차를 세워 거연정부터 차근차근 걸었다. 계곡 가운데 서 있는 거연정은 이제는 자연의 하나처럼 느껴진다. 거연정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지만 건너편에서 거연정을 바라본 풍경은 오히려 정겹다. 거연정 바로 옆으로 군자정이 있다. 군자정은 일두 정여창 선생이 시를 읊어 이름마저 군자정이다. 군자정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 했는지 찾았을 때는 곳곳이 훼손되어 정자에 올라가기 위험했다.
군자정을 나와 봉전교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선비문화탐방로가 시작된다. 선비길을 걸으면서 계곡물소리를 벗처럼 함께 할 수 있다. 화림동 계곡의 맑은 물들이 기암괴석 사이로 졸졸졸 흘러 걸음을 늦춰 걷다가도 때로는 쏴~하며 힘차게 흐른다. 길 역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곳곳에 나무데크 등으로 잘 가꿔져 있다.
온통 나무데크 등으로 흙을 밟을 일 없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곳곳이 흙길이다. 지리산이 지척이라 산의 허리를 둘러가는 길에서는 아름드리 소나무의 높은 기상에 잠시 땀도 식혔다. 땀을 식혀 준비해간 보온병의 커피를 마시자 영귀정이다. 영귀정 옆에 기와로 만든 한옥이 서 있는데 사유지라 들어갈 수 없다. 영귀정을 지나 다시 계곡물과 친구하다 보면 금세 다곡마을이다. 계곡의 폭이 넓어지고 물소리가 좀 더 힘차다.
힘찬 물소리에 걸음도 빨라지자 동호정이다. 농월정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사라지고 난 뒤 동호정이 화림동 계곡 중에서 가장 크고 멋진 정자로 남았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너럭바위가 정자 앞에 계곡 속 섬처럼 있다. 동호정 주위에 징검다리가 있어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폴짝 뛰어보니 소나무 숲. 긴 의자에 준비해간 음료를 마시며 주위를 다시금 둘러보니 절로 시 한 수 읊고 싶어졌다. 시를 대신해 사진기로 아름다운 풍광을 열심히 담았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서 가장 최근에 세워진(1978년) 경모정을 지나니 옛 농월정이 보인다. 아쉽게도 급커브 도로를 지나야 한다. 이 길이 선비길 중에서 가장 위험했다. 도로 위 차량들은 여유가 없이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기 때문이다. 2차선 도로를 지나자 다시 선비길. 옛 농월정에 다다랐다. 농월정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군내버스를 타고 주차한 거연정휴게소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에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중간중간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멋과 맛을 즐겨보리라 다짐했다.
글·사진·김종신 경남 진주시하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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