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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형미의 극치, 한국의 문살무늬

깜보입니다 2013. 4. 25. 10:32

 

건물의 용도에 맞게 문살의 모습이 결정된다.


 

문이란 움직임 없이 고정된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안과 밖을 이어주는 소통의 연결고리이자 너머의 공간을 구분 짓는 경계이기도 하다. 무표정하게 서 있는 건물 같지만, 문살의 모습으로 건물의 성격이 결정된다. 건물의 모든 요소에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마지막으로 마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듯 문살로써 마무리 짓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문살을 만드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건물의 쓰임에 따라 문살도 달리 했다. 궁궐이나, 사찰, 양반가의 고택에서 그 성격을 잘 구분하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문살은 물론, 출가하지 않은 딸이 기거하던 별당의 문살에도 의미를 담았다.


 

권위와 종묘사직을 위한 궁궐문살


 

궁궐이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임금이 살던 곳이다. 웅장한 팔작지붕과 건물 규모에서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데 문살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나라의 안녕과 종묘사직을 위한 의지를 문살에 표현해 놓았다. 경복궁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임금이 어전회의를 열던 근정전勤政殿이다. 이곳의 문살에는 격자비꽃살문을 단순화하여 조각했다. 언뜻 보면 약간의 조각으로 사방팔방 무늬를 겹쳐 견고함만을 추구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여섯 개의 꽃잎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꽃이 되었다. 현대감각으로 바라보아도 손색이 없다. 잘 디자인된 평면그래픽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 가운데는 곡선이 모여 우연을 가장한 꽃 수술까지 표현해 놓았다. 꽃들이 연결되어 꽃밭을 이루고, 부귀와 영광, 즉 임금으로서 가져야 하는 나라의 안녕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표현했다.


 

왕비의 침전이자 내명부를 책임지던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이나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은 특별히 촘촘하게 짜인 살문이다. 이것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발로였다. 촘촘한 것은 빛이 투과해 방안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은밀한 시선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있다. 명작은 어느 구석진 곳의 작은 부분을 잘라도 멋진 작품이 되는 것처럼 이곳의 문살 역시 그렇다. 몇몇의 공간 면에 원색을 채우면 몬드리안의 작품을 넘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창덕궁 낙선재 문살을 보자. 화려함으로 치자면 절집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선 24대 왕 헌종의 뜻에 따라 소박함을 강조하여 단청을 하지 않았다. 단아하면서 검소하고, 견고하면서 살짝 멋을 입힌 문살들의 축제다. 작은 창에는 완자문, 세로로 긴 문에는 변형된 아자문, 작은방 바라지창에는 촘촘한 우물살문, 띠살문 등 방의 규모와 용도에 맞게 적절히 한 점이 이채롭다. 작은 창에는 완자문, 세로로 긴 문에는 변형된 아자문, 작은 방에 바라지창에는 촘촘한 우물살문, 띠살문 등 방의 규모와 용도에 맞게 적절히 한 점이 이채롭다.

검소함과 상념을 담은 반가의 문살


 

양반가에서는 궁궐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주로 띠살문이 많이 보인다. 띠살문은 유교儒敎의 가르침인 사치와 허영을 배제하는 검소함과 강건하고 올곧은 마음을 잘 나타낸다. 가로와 세로로 일정간격 촘촘하게 짠 우물살문도 가끔 보인다. 이것은 야단스럽지 않은 반가의 단아함을 강조해 놓은 것이다. 함께 붙어있는 문살에 따라 우물살문을 다는 경우가 많다. 사랑채 양끝 칸에 검소한 띠살문을 달았다면 가운데 칸은 우물살문을 달아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다.


 

안주인이 거주하는 안채는 조금 색다르다. 경북 청송의 99칸 송소고택처럼 띠살문을 열면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亞’자 살문의 미닫이가 하나 더 있다. 이중의 방문으로 이것은 미적美的발로와 함께 계절과 날씨에 따라 여닫기를 다르게 함이다. 금남禁男구역인 별당 아씨의 방문을 보자. 주로 헐거운 ‘아亞’자 살문이 많이 나타난다. 제한된 영역인 만큼 창을 통해 바깥 날씨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고, 시간에 따라 채광을 달리하며, 조금씩 빛이 변해가는 모습에서 소소한 아름다움을 찾았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별당 아씨의 마음을 한번 더듬어 보자. 방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모습을 마주한 채 다소곳이 앉아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다. 얼굴의 고운 옆선은 빛을 받아 발그레 물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빛의 무늬진 모습을 보며 가슴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설렌다. 방안의 반닫이와 반짇고리 등이 하나의 띠처럼 어울리고, 방문 하나로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조금씩 변화되는 빛의 신기와 함께 담담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아름다움의 극치, 절집 문살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절집 문살을 보자.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라 더 가릴 것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장엄세계莊嚴世界를 표현한 단청처럼 문살 또한 완전한 세상을 구현해 놓았다. 그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문 하나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절집의 문은 나와 부처님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고통으로 가득 찬 언덕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세상인 피안彼岸으로 가는 경계이다. 그런 만큼 겸손도없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치려고 든다. 튼실한 우물살문도 많이 보이지만 우물살문도 견고함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멋을 부려 부처님 탄신을 축원한다. 절집문살에는 모란과 국화가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꽃이란 불교에 있어 깨달음이며, 불법의 상징이다. 경남의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처럼 다양한 꽃을 한곳에 모아놓은 살문도 있다. 불법佛法의 향기가 온 세상에 널리퍼지기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를 담아 그야말로 문 그 자체가 꽃밭이다.


 

인천의 강화도 정수사淨水寺대웅보전 어칸의 사분합문四分閤門처럼 방금 채색한 듯 호화롭고, 화려한 색감의 모란과 연꽃이 청자와 진사자기에서 막 피어오른다. 이것은 어느 장인의 훌륭한 솜씨를 거침없이 보여주는데 부처님께 꽃을 바치듯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했다.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행복하게하는 자양분이다. 이곳 문살과 마주하면 마음은 풍요로 가득 차오르고, 은은하게 퍼지는 착각의 향기는 덤이다.

우리 전통문살의 아름다움


 

우리의 옛 미술품은 구조적 기교만을 자랑하지 않는다. 문살 역시 마찬가지다. 모습에 따라 세련된 디자인 작품을 보는가 하면, 솟을살문에는 미술학도들의 사방팔방의 무늬를 연상케도 한다.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문처럼 역동성도 담겨있고, 화려함에 넋을 놓지만, 실상은 소박한 소망도 있다. 여백의 미, 띠살문처럼 그다지 슬플 것도 없는 무덤덤한 삶이 주는 행복도 담겨있다. 그리고 연결이 주는 아름다움의 극치, 길상만복을 염원하는 ‘만卍’자를 모티브로 한 완자살문이 주는 세련미는 가히 압권이다. 어느 그래픽디자이너가 있어 이토록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할까? 정제된 것 같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살을 따라 눈을 옮기다 보면 화합과 연결이 주는 질서가 가슴에 각인된다. 이 외에도 한국의 문살은 장수長壽를 뜻하는 ‘귀갑龜甲’ 살문을 위시하여 용자살문, 꽃완자살문, 매화꽃살문 등 30여 가지나된다. 조형미의 극치, 우리 전통문살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은 절대 고독도 순간에 녹여버리는 마법 같다.


 

글·사진. 박필우 (답사여행작가)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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