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펌)[기고]미혼모는 과연 할 말이 없을까

깜보입니다 2018. 6. 27. 16:39

“처녀가 아이를 배도 할 말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 반어법으로 쓰는 말이다. 이 말에는 미혼모를 할 말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미혼모의 임신과 출산을 일탈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의 출산에 대하여 혼인관계가 전제된 것인지 여부를 따져 혼인이 전제된 출산은 축복을 보내고, 혼인이 전제되지 않은 출산은 일탈로 여기는 가치판단을 해왔다. 

[기고]미혼모는 과연 할 말이 없을까

그런데 과연 미혼모가 할 말이 없을까. 현실의 미혼모는 할 말이 많다. 미혼부는 어디로 가고 책임지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어떻게 낳고 키워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미혼모가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던 것은 미혼모의 출산을 일탈로 바라보고 단죄하는 시선이 곳곳에서 미혼모의 질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미혼모는 출산을 결심한 시점부터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부모는 혼인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일탈행위를 자녀가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기 어려워하며 자녀와 관계를 단절할 정도의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많은 미혼모는 부모와 심각한 갈등으로 같은 주거공간에서 생활하기가 어렵고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도 부모와 관계 회복이 쉽지 않다.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도 미혼모의 출산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미혼모의 대다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낙태를 권유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갈등을 겪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직장에서도 미혼모의 출산은 일탈행위로 간주된다. 주위의 수군거림 대상이 되고 심한 경우 사직을 권유받기도 한다.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지만 이미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과 출산을 둘러싼 갈등을 겪어온 미혼모가 평소 가보지 않았던 관공서인 노동위원회를 찾아가 일탈로 바라보는 시선을 감내하고 구제를 신청하는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미혼모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일탈을 단죄하는 시선에 지쳐간다. 아직 많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낙태와 입양을 선택한다. 사회는 미혼모를 외면하고 출산을 일탈로 규정하는 데 몰두했을 뿐 정말 중요한 문제,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돌볼 것인가에 대한 응답에는 무심했다. 

혼인관계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이에 대한 시선이 달랐던 것은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일정한 틀을 갖추어야만 정상가족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은 관계는 일탈로 보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완고함이 내재되어 있다.

가족을 근대화의 해결사라고 명명했던 어떤 사회학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사회서비스가 담당해야 할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보호하고, 가르치는 문제를 전적으로 부담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가족은 사회를 떠받치는 지지대였고, 그 이면에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가족 형태는 일탈로 규정하여 배제해 왔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회는 가족에게 무거운 짐을 안겼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가족의 형성에 부담을 느끼고 비혼을 선택하고 있으며 혼인관계가 아닌 출산을 일탈로 규정하는 시선 때문에 출산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미혼모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미혼모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저출산과 미혼모 지원을 연결하는 시각에 대하여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까지 외면했던 미혼모와 아이에 대하여 소중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2만4000명의 미혼모들이 지원에 힘입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혼인 여부에 따른 가족 형태의 틀 안에서 아동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부모와 독립된 개별적인 주체로서 아동이 보호받고 존중받는 것이다. 온전하게 아동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아동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정책이 설계되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필자는 입양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산한 아이에게 “아가야, 잘 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는 미혼모의 슬픔을 기억한다. 태어난 모든 아이는 부모가 누구든 부모가 어떤 관계든 탄생을 축복받을 수 있기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사회가 같이 책임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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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62032005&code=990304#csidx7bf79006021a6ae88df71153afe4a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