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최고 명승은 도봉산·금강산·포천 금수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선비도 현대인처럼 유람을 좋아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말이나 배를 타거나 걸어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사대부들이 남긴 기록 중에는 여행기가 적지 않고, 가경(佳景)을 감상한 뒤 지은 시도 많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인기가 높은 유람 장소는 어디였을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명승학회가 창립을 기념해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과 함께 '명승학의 연구방법론과 명승 연구의 실제'를 주제로 지난 22일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전국 명승지를 다룬 19세기 문헌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명승(名勝)은 사전적으로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뜻하지만,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 명칭이기도 하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은 물론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풍경, 저명한 정원이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 지정 대상이다.
안 교수가 검토한 서적은 '동국명산기', '와유편'(臥遊篇), '해좌명승'(海左名勝), '팔선와유도'(八仙臥遊圖), '청구남승도'(靑邱覽勝圖)다.
그는 5개 문헌에 모두 등장하는 명승은 도봉산, 금수정(金水亭), 금강산 세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봉산은 청구남승도에만 '망월암'(望月庵)으로 기록됐고, 나머지 책에는 '도봉'(道峯)으로 나왔다. 금수정은 포천에 있는 정자로, 조선 전기 문신 양사언이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금강산은 지금도 손꼽히는 명산이다.
삼각산(북한산)과 남한산성, 단양팔경, 설악산, 변산, 광한루, 송광사 등 17곳은 4개 문헌이 소개했다.
용문산, 한벽루, 탄금대, 관동팔경, 가야산, 태백산, 경주, 영남루, 지리산, 한라산, 월출산 등 25곳은 3개 문헌에 이름을 올렸다.
안 교수는 "이 목록은 조선 후기 각각의 명승이 누린 인기와 위계를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고 여겨도 된다"며 "목록에 많이 뽑힌 곳이 유명하고 방문 여행객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3개 문헌 이상에 나온 명승은 전국적 명성을 누리는 곳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다양한 문헌의 명승 목록을 정리해 지도를 만들고, 명승의 명성과 평가·범위·위계를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명승 정책 연구의 현황과 당면과제' 발표에서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증가했음에도 여전히 정체성이 모호하고 관리 주체가 겹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은 명주 청학동 소금강·울진 불영사 계곡·강진 백운동 원림 등 113건으로, 2000년대 후반에 특히 급증했다.
이 연구사는 "국민들이 명승을 단순한 관광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명승에 관한 이상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승학회장인 류제헌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명승은 자연유산이자 인문정신이 담긴 무형문화유산"이라며 "조선시대 명승을 지각하고 경험한 방식과 내용을 충분히 연구해 현대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문적 경계를 초월하는 명승 연구를 시도해야 한다"며 "명승을 조사하고 재조명하면 지역 정체성을 구축하고 문화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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