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플로깅, ESG를 쉬운 우리 말로 바꾸면? [탄소 후 미래]
노광준 입력 2022. 06. 16. 15:51 댓글 20개
[노광준 기자]
▲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문 앞 현수막 촬영일 : 2022년 6월13일 |
ⓒ 노광준 |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앞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어있다.
'제로웨이스트 챌린지 플로깅 캠페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걸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그런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 그 학교 선생님들도 그래서 저런 현수막을 썼을 것이다. 기후분야는 특히 이런 외국어들이 많다. 그냥 외국어도 아니고 숫자 섞인 줄임말들이 자고 일어나면 등장한다. ESG, COP26, IPCC, 넷제로, 택소노미... 하나같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수입산 그대로 유통되다보니 어느새 특별한 사람들만 쓰는 '그들만의 언어'처럼 장벽이 생긴다. 생소한 그들만의 리그에 시민참여가 활발할 수 있을까?
고민끝에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봤다. 공공분야 언어의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펼쳐온 한글문화연대 김명진 부대표에게 현수막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챌린지는 예전부터 저희가 '도전'이라고 바꿔부르자고 제안드려왔고요.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 없애기, 플로깅은 '줍깅'이라는 시민들의 언어도 좋지만 최근 국립국어원 새 말 모임에서 '쓰담 달리기' 라는 제안을 했거든요. (예쁘네요) 예. 쓰레기 담아 달리기...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제안드려요. '도전! 쓰레기 없애기와 쓰담 달리기'."
'제로웨이스트 챌린지 플로깅 캠페인'
'도전! 쓰레기 없애기와 쓰담 달리기'
▲ 한글문화연대 김명진 부대표 |
ⓒ 노광준 |
- 기후분야 용어들에 관심갖게 된 계기는?
김명진 부대표 : "저희는 사실 공공언어에서 쉬운 말을 쓰자는 운동을 계속 펼쳐 왔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로 쓰는 전문용어들이 우리를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게 도대체 뭔지 몰라서 주눅들게 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라는 운동을 계속 펼쳐 왔었습니다. 그러다 요즘 들어 많이 쓰이고 있는 'ESG 경영'에 주목했죠."
- 기업의 환경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는 원래 시민들의 단어 아닐까요?
김명진 부대표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그냥 경영자들이 자기들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우리 후손들도 같이 살기 좋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되는데, 그런 참여가 많게 하려면 누구든지 들어서 이해하기 쉬워야 된다고 생각했죠."
- 그렇다면 ESG,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바꿨나요?
이건웅 대표 : "주로 언론과 방송계에서 ESG, 이 말을 사용하면서 기자분들도 직역을 해서 보도했던 거죠. '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환경사회지배구조? 저게 뭐지? 계속 환경사회지배구조, 저게 뭐지? 이래서 관심을 갖고 봤죠. 지배구조라면 저건 '거버넌스'를 직역했을 것 같은데, 사실 '지배'라는 말이 갖는 좀 억압적 성격 이런 것 때문에 저 말이 뭔가 상당히 큰 장벽이 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해서 우리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말모이 한글문화연대'에서 저희가 먼저 얘기를 꺼냈죠. 그때 거기서 정리했던 말이 '환경사회 투명경영'이었어요. 여기에 실제로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해온 전문가께서 '사회가치경영' 이런 쪽으로 또 다른 제안을 주셨죠."
- 이후 활용은?
이건웅 대표 : "제가 알기로는 몇 달 뒤에 국어원 새말 모임에서 이 말을 다루었고 새말 모임 위원들 중에서 아마 어떤 분이 '환경사회 투명경영' 쪽을 제안을 하셨겠죠. 그리고 그게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은 건데 그 때에는 '사회가치경영'이라는 말까지는 안 나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그것을 제안하게 된 거고 저희는 그 말과 함께 '사회가치경영' 두 가지를 제안해서 어느 말이 더 많이 쓰이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 여러 개를 같이 제안할 수도 있군요?
▲ 한글문화연대 이건웅 대표 |
ⓒ 노광준 |
- 저처럼 외국어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김명진 부대표 : "어려운 외국어가 있으면 사람들은 '저게 뭐지' 하면서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불편해해요. 뭔가 말할 수 있는 기회도 그러다보면 놓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 말을 나는 모릅니다. 쉬운 말로 바꿔주세요.' 하고 계속 꺼내서 말을 바꾸도록 해줘야 되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그래서 주변에서 시민들도 저희한테 제보를 하고 있어요.
'쉬운 우리말을 쓰자' 이런 누리집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 곳에 사진 찍으신 것들을 올리면서 어디에서 이런 말을 썼다고 적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모아서 공문서를 통해서 요런요런 말로 바꿔써주세요라고 요청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몰랐네요. 일종의 집단지성을 활용한 말모이 활동?
김명진 부대표 : "예전에 심정지 사고에 잘 대처한 분께 주는 '하트세이버'란 상이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어떤 분이 그 말이 너무 불편해서 관공서에 바꿔달라고 요청했데요. 그런데 개인인 자신이 말하니까 의견을 묵살하더란 거예요. 그 분께서 '너무 화가 나는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다'면서 저희에게 연락해 오셨어요. 이후에 저희가 대응해서 해당 기관으로부터 긍적적인 답변을 얻은 적이 있었어요.
제보하신 분은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그런 것들이 바뀌면) 기본적으로 심정지 사고에 잘 대응하는 분들이 쉬운 말을 통해 확산되는 거잖아요. 이젠 말이 어려워서 내가 해야 할 말을 못한다거나 내가 알아야될 걸 모른다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소외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를 널리 퍼트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쉬운 우리말로 바꿈에 있어 공직자, 기자, 학자 중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할까요?
김명진 부대표 : "사실은 공공기관에서 이런 말들은 빨리빨리 우리말로 바꿔서 써나가는 등 솔선수범해야 해요. 사실은 법적으로도 근거가 있어요. 국어기본법에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는 국민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과 문장으로 써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그래서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게 의무사항입니다."
이건웅 대표 : "지금 중요한 건 전문용어들이거든요. 예를 들면 '넷제로'를 탄소중립으로 얘기를 해주니까 그나마 낫지, 안 그러면 계속 넷제로, 넷제로 하는 거죠. 얼마 전에 모임을 하는데 그 전까지 저는 '넷제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기후 그 자체에 관심이 있지만 그런 걸 쓰고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넷제로'라고 하길래 저는 실제로 둘째는 다 어디가고 '넷째로' 말하고 있나 그랬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네트제로'였는데, 당시엔 추정만 했지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그 자리에서 물어보면 무식한 사람 취급 받을 것 같아서... 말버릇이라는 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 도입될 때부터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근데 언론에 계신 분들이나 담당 공무원은 마음먹은 대로 말을 바꿔쓰기에는 특히 부담스럽거든요. 학자들의 역할도 중요하고, 공공기관에서도 자체 힘으로 힘들면 외부용역을 주든지 해서 쉬운 우리말로 바꿔쓰기에 솔선수범해야합니다. 안 그러면 그냥 외국어로 남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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