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e이야기 345

(펌)백제용봉대향로의 발굴

물웅덩이 속 금동대향로는 백제멸망 순간의 증거였다 [이기환의 Hi-story] 경향신문 선임기자 입력 2021. 03. 02. 06:03 수정 2021. 03. 02. 16:20 댓글 131개 [경향신문] 1993년 10월26일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립니다. 일본 규슈(九州) 미야자키현(宮崎縣) 난고손(南鄕村)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와 제사를 지낸 겁니다. 뜬금없죠. 왜 남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그것도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낸단 말입니까. 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물구덩이에서 확인된 금동대향로. 백제멸망의 순간을 증언해주고 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일본 난고손 주민들의 고유제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다들 백제가 660년 나당 연합..

(펌)삼전도비

'치욕의 삼전도비문' 누가 썼나..'오랑캐 아부' 비난 너무 억울 - [이기환의 Hi-story] 경향신문 지난 1월 30일 저는 매우 유서깊은 곳을 다녀왔는데요. 아주 좋은 곳은 아니구요. 바로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현장의 유물 중 하나인 삼전도비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고 나니까 1월 30일이더라구요. 그 날이 1637년 1월30일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사건이 있던 날이잖아요. 물론 당시엔 음력이었으니까 양력으로 따지면 1637년 2월24일로 환산되더군요.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음력 1월30일로 기억되니까 뭐 겸사겸사해서 답사한거라구 저는 생각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항복의 상징으로 알려진 ‘삼전도비’. 1637년 1월30일(음력) 청나라에게 항복한 뒤 조성한 청태종 공덕비이다. ■수난당한 삼전도비..

담양 겨울 나들이

6시 반에 일어났다. 30분 늦었다. 7시에 출발한다고 큰소리쳤는데... 부랴부랴 아침 챙겨 먹고 간단하게 먹거리와 간식거리 챙기고 집을 나선다. 7시 30분에 출발이다. 내부순환도로는 생각보다 잘 빠져나간다. 성수대교를 지나니 일사천리로 나간다. 전용차선으로 들어가니 무섭다. 버스도 제대로 없다. 오산까지 막힘없이 잘 빠져나갔다. 망향휴게소에 도착. 2시간의 운행 후의 쉼은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활력을 넣어주는 느낌이다. 자주 이용하는 고속도로는 나에게 그러한 리듬을 만들어 준 셈이다. 전라선을 따라 가다 오수휴게소에서 한 번 더 쉬어간다. 아내는 내옷과 자신의 옷을 하나씩 구입한다. 옷값이 싸다고... 송순의 면앙정가. 면앙정에 오른다. 날씨는 좀 풀리긴 했지만 바람이 불어 추위는 더 깊게 느껴진다. ..

담양 겨울 나들이

6시 반에 일어났다. 30분 늦었다. 7시에 출발한다고 큰소리쳤는데... 부랴부랴 아침 챙겨 먹고 간단하게 먹거리와 간식거리 챙기고 집을 나선다. 7시 30분에 출발이다. 내부순환도로는 생각보다 잘 빠져나간다. 성수대교를 지나니 일사천리로 나간다. 전용차선으로 들어가니 무섭다. 버스도 제대로 없다. 오산까지 막힘없이 잘 빠져나갔다. 망향휴게소에 도착. 2시간의 운행 후의 쉼은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활력을 넣어주는 느낌이다. 자주 이용하는 고속도로는 나에게 그러한 리듬을 만들어 준 셈이다. 전라선을 따라 가다 오수휴게소에서 한 번 더 쉬어간다. 아내는 내옷과 자신의 옷을 하나씩 구입한다. 옷값이 싸다고... 송순의 면앙정가. 면앙정에 오른다. 날씨는 좀 풀리긴 했지만 바람이 불어 추위는 더 깊게 느껴진다. ..

(펌) 노형석 기자의 시사 문화재

2000여년 전 경산벌 다스린 20대 청년의 정체는… 등록 :2021-02-01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경산 양지리 목관묘가 증명한 고대 한반도의 기상 국립대구박물관 ‘떴다! 지배자’ 테마전에서 선보여 국립대구박물관 테마전에 나온 오수전 박힌 꺾창집. 기원 전후 시기로 추정되는 경산 양지리의 지배자 목관묘 요갱에서 출토된 작품이다. 26개의 오수전이 옻칠한 표면 위에 박혀 있는 독창적 디자인은 선례를 찾을 수 없다. 오수전은 중국 전한, 후한대의 고대 동전이다. 당대 지배자가 중국 등 국외세력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재력을 쌓았음을 과시하는 의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2000여년 전 한반도 남부를 호령한 권력자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었다. 중견 고고학자인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은 3년 전인..

(펌)왕릉 가는 길

그저 걷다보면 다 만나는 ‘역사·옛사람·풍경’ 600㎞ 조선 왕릉 순례길 담아 ‘왕릉 가는 길’ 펴낸 도보답사 전문가 신정일씨 경기 구리 동구릉의 시작인 태조 건원릉은 조선왕조 왕릉 제도의 기준이 되었다. 능으로 오르는 향어로를 지나 정자각과 비각, 봉분으로 이어진다. 태종이 봉분에 잔디 대신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쌤앤파커스 제공 “제가 안 가본 데 없이 돌아다녔잖아요.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길도 저마다 매력이 있지만, 조선 왕릉 순례길처럼 안전하고 아름다운 길은 없는 것 같아요. 왕릉에선 역사를 알 수 있고, 옛사람의 이야기가 얽혀있죠.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그 ..

(펌)문경산전

'백제 8가지 무늬 전돌' 중 최초·최고의 산수인물화 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 선임기자 입력 2020. 12. 29. 06:00 댓글 62개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news.v.daum.net/v/20201229060006082URL복사 [경향신문] 1937년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문양전(무늬 전돌)’ 중 산수인물화의 시원으로 꼽히는 ‘산수무늬 전돌’. 하단에 물, 중앙에는 산과 나무, 그리고 윗부분에는 하늘을 그렸고, 오른쪽 하단부에 스님인지, 도인인지 모를 신비의 인물이 암자로 보이는 팔작기와 건물을 향해 걷고 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아니 금관이나 반가사유상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1960~2019년 사이 해외전시를 다녀온 한국문화재 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

(펌) 경천사탑 이야기

"일본 장관이라는 작자가!"..경천사탑 강탈사건을 세계에 폭로한 두 외국인 [이기환의 Hi-story] 경향신문 선임 기자 입력 2020.11.16. 06:30 1900년대 초까지 개성에서 약 20㎞ 떨어진 풍덕군 부소산 기슭에 있는 절터에는 특이한 탑 한 기가 서있었습니다. 아(亞)자형 3단 기단을 빼면 10층이어서 경천사 10층 석탑이란 이름이 붙었고, 높이가 13m나 되는 대형탑이었습니다. 옥개석 밑에 새겨진 명문(발원문) 등에 이 탑의 조성자는 1348년(충목왕 4년) 원나라에 빌붙어 권세를 누린 강융(?~1349)과 고용보(?~1362) 그리고 원나라 승상 탈탈(1314~1355) 등입니다. 이들은 고려왕실이 아니라 순전히 원나라 황제(혜종·재위 1330~1370)와 황후(당시 고려 출신인 기씨..

(펌)조선시대 지방사립초등학교 서당 3건 보물된다

조선시대 지방사립초등학교 서당 3건 보물된다..서원·항교 포함 20건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20.11.06. 10:46 [경향신문] 보물로 지정예고된 서당인 ‘옥천 이지당’. 의병장인 조헌(1544~1592)이 충북 옥천에서 유상(游賞·놀고 구경함)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정자형 건물이다.|문화재청 제공 지금의 지방 공사립학교격인 향교와 서원, 서당이 대거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문화재청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의 명륜당’ 등 20건의 서원(서당 포함)·향교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서원 및 향교 430건 가운데 전문가 사전검토를 거쳐 선정한 33건을 대상으로 지정조사를 벌인 끝에 20건을 최종 낙점했다. 보몰로 ..

(펌)신라 금관의 미학

발견, 그 자체로 놀라웠던 금관 현재 우리에게 전해오는 순금제 금관은 모두 8점. 그 가운데 6점이 5~6세기 신라 것이고 나머지 2점은 가야의 금관이다. 신라 금관은 교동 고분 출토 금관(5세기),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5세기, 국보 제191호), 금관총 출토 금관(5세기, 국보 제87호), 서봉총 출토 금관(5~6세기, 보물 제 339호), 금령총 출토 금관(6세기, 보물 제338호), 천마총 출토 금관(6세기, 국보 제188호)이다. 그중 교동 금관을 제외하면 그 형태가 모두 비슷하다. 나뭇가지 모양[出字形]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을 관테에 덧대어 금못으로 고정하고, 곡옥(曲玉)과 달개 등으로 장식한 모습이다. 신라 금관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21년 9월 23일 경주시 노서동의 한 집터 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