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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오천축국전, 1283년 만의 고국나들이

깜보입니다 2010. 12. 18. 08:55

한국인이 작성한 최초의 해외 여행기이자 세계 최고의 여행기 중 하나로 꼽히는 ‘왕오천축국전’이 1,28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습니다. 12월 18일부터 내년 4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준비한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왕오천축국전은 727년에 통일신라시대 고승인 혜초에 의해 기록된 이후 처음 고국을 찾는 것이며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국사책에서 숱하게 들어왔던 왕오천축국전,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맞이하며 왕오천축국전의 탄생 배경과 내용, 현재 프랑스에 가 있게 된 경위, 그리고 전시회 내용을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http://yoksa.aks.ac.kr)의 도움을 받아 알아보겠습니다.


>> 왕오천축국전 개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통일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고대 인도 다섯 곳을 답사한 뒤 성덕왕 26년인 727년에 쓴 기행문입니다. ‘천축’이란 8세기 당시 중국 사람들이 고대 인도를 부르던 말로 왕오천축국전이란 인도의 다섯 나라를 답사했다는 의미입니다.

왕오천축국전 (새창)
 왕오천축국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혜초의 천축기행을 보면 처음 동천축국을 여행할 때만 해도 주된 관심은 불교였습니다. 그러나 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으로 옮겨가면서 혜초의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 언어와 기후, 지리 등 자연환경으로 확대됩니다. 때문에 왕오천축국전에는 불교와 관련한 내용 외에도 서역 사람들의 삶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전해지는 불교유적 순례기가 육지로 갔다가 바다를 통해 오거나 육지 또는 바다 한 길을 통해 순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왕오천축국전은 바다로 갔다가 육지를 통해 돌아온 기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왕오천축국전이 처음부터 일반인에게 알려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후 프랑스 동양학자이자 고고학자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중국 둔황의 막고굴 17굴 석실에서 이를 찾아내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펠리오는 당시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고 프랑스로 이를 가져갔고 이후 현재까지 프랑스에 소장되게 된 것입니다. 최초의 불교유적 순례기로도 불리지만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필사본 1권 1책이 보관돼 있습니다.     

처음 발견 당시 왕오천축국전은 두루마리 형태로 앞부분과 뒷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제명도 저자명도 없었습니다. 겨우 한 행에 30자 내외로 모두 227행의 한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총 227행에 5893자로 세로 28.5㎝, 가로 42㎝ 크기의 종이 아홉 장을 붙여 만든 것으로 총 길이는 358㎝입니다.


>> 혜초(慧超 704~787)를 말하다
혜초는 704년에 신라 수도인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5살 되던 해인 719년에 밀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서 밀교를 배웠습니다. 금강지는 남인도 출신으로 제자인 불공(不空)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 밀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초조(初祖)가 돼 밀교를 전하던 사람입니다. 밀교는 비밀불교란 뜻으로 7세기에 대승불교의 화엄사상, 중관파, 유가행파 사상 등을 중심으로 해서 인도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종교입니다. 

밀교를 배우던 혜초는 4년 뒤인 723년 19살의 나이에 인도로 구법 기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구법 기행이란 험난한 길을 직접 걸으면서 기록하는 것으로 혜초는 구법 기행 결심 후 곧 중국 광저우를 떠나 뱃길로 인도에 도착해 불교의 8대 성지를 순례합니다. 서쪽으로 간다라를 거쳐 페르시아, 아랍,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추치와 둔황을 거쳐 727년 당나라 수도인 장안으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4년이 걸렸고, 이동경로만도 약 2만㎞에 달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이때 돌아와 쓴 기행문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입니다.

혜초는 누구인가 (동영상) (새창)
 혜초는 누구인가 (동영상)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바로가기


733년에는 당나라 장안 천복사의 도량에서 금강지와 함께 밀교 경전을 연구합니다. 740년엔 이 경전의 한역에 착수했으나 이듬해 금강지의 죽음으로 중단했습니다. 혜초는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불공삼장(不空三藏) 6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쳤으며 중국 밀교의 법맥은 금강지-불공-혜초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혜초는 중국 장안에 한동안 머물다가 780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오대산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787년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혜초의 천축국 기행 따라잡기
천축국 기행동안 혜초는 불교가 가장 성행했던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마다가국(현재의 비하르)을 비롯해 석가모니가 입적한 곳인 쿠시나가라(현재의 카시아), 석가모니가 처음 설법한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를 거쳐 라자그리하에 들어가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에서 참배하는 등 불교 유적지를 순례했습니다.

혜초의 이동 경로 (새창)
 혜초의 이동 경로
    출처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바로가기


중천축국의 수도 카나우지에 머물면서는 코끼리 900여 마리를 거느린 왕과 200~300마리의 코끼리를 가진 대수령들에 대한 얘기와 인도 전역의 기후, 풍습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의 음식은 멥쌀로 빚은 떡과 미숫가루, 우유 등이 있고 장(醬)은 없고 소금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가축을 기르지는 않지만 소만은 즐겨 기른다고 했습니다.

다섯 천축국의 의복과 언어, 풍속, 법 등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우선 법을 보면 죄수의 목에 칼을 씌우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형벌이나 감옥에 가두는 것은 없으며 죄인에게는 그 죄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은 없었다고 썼습니다. 사냥하는 것은 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보지 못했으며 길에는 도적이 많기는 하나 물건만 빼앗고 즉시 풀어줬으며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바로 주지 않으면 해를 끼치기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후 혜초는 현재의 데칸 고원인 남천축국에 들러 과거 용수보살의 신력으로 세웠다는 큰 사원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서천축국을 거쳐 북천축국,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 일대와 간다라 문화 중심지 등을 차례로 들렀습니다. 이어 현재의 카슈미르 지방에 들른 후 거꾸로 간다라 지방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스와트, 길기트, 페샤와르, 오장국, 구위국 등을 답사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서부 투르키스탄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국경지대인 투카라에 상당 기간 머물면서 그 지방의 인물이나 풍속 등을 기록했습니다. 이 지역이 동서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인근 여러 곳에 대한 정보를 얻어 페르시아나 사라센, 동로마 제국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기술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파미르 고원을 넘어 727년 11월에 당의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로 돌아오면서 혜초의 해외 여행기는 끝이 납니다.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의 정치, 문화, 경제, 풍습 등을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으로 육로와 해로 기행이 함께 언급돼 있고, 일반적인 정치 정세 외에도 불교의 대승이나 소승이 각각 어느 정도 행해지고 있는지, 또 인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대해 음식, 의상, 풍습, 산물, 기후 등도 기록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돋보이는 기행문으로 꼽힙니다.


>> 왕오천축국전, 세상 밖으로 나온 사연
오랜 시간 잠자던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프랑스의 동양학자였던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베트남 하노이의 프랑스 극동학원 교수(1901)를 거쳐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중앙아시아 각지를 답사하는 등 동양학 지식은 물론 한자와 중국어 실력도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폴 펠리오(Paul Pelliot) (새창)
  폴 펠리오(Paul Pelliot)
     출처 : Wikipedia


그런 그가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중국 둔황 막고굴에 도착한 것은 1908년 2월. 펠리오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둔황의 관리인 격인 왕 도사를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산더미 같은 고문서가 쌓여있는 17굴, 장경동(藏經洞)을 조사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전 러시아나 영국에서 온 탐험가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펠리오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이 왕 도사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펠리오는 3주 동안이나 이곳에 매달려 고문서를 조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앞 뒤 일부가 떨어져 나간 필사본 두루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서명이나 저자명도 떨어져 나간 상태였지만 그의 동양학 지식으로 왕오천축국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펠리오는 17호 석실 안에 있는 문서가 동양학의 보고임을 눈치 채고 왕 도사를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중요 문서 6,000여 점을 선별해 500냥이라는 헐값으로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둔황을 떠난 펠리오는 수집한 문서들을 포장해 프랑스로 부쳤고 이때 왕오천축국전이 함께 프랑스로 가게 된 것입니다. 펠리오는 이듬해인 1909년 이를 학계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혜초는 중국 승려로 인식되다가 1915년 일본인 학자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혜초가 신라 승려임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후 1928년 독일학자 월터 폭스에 의해 최초의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1943년에는 최남선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혜초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학자 펠리오에 의해 1,181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고, 이후 1,283년이 지난 2010년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 2010년 12월, 왕오천축국전을 만나다
12월 18일부터 내년 4월 3일까지 계속되는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왕오천축국전이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역사적인 전시회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해 중국의 신쟝, 간쑤, 닝샤 등 3개 성 10여 개 박물관의 유물 220여 점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실크로드와 둔황 - 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 (새창)
실크로드와 둔황 - 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바로가기


‘혜초와 함께 하는 서역 기행’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이번 전시는 당시 혜초가 여행했던 길을 따라 파미르 고원 동쪽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총 4부로 구성됩니다. 각 주제는 1부 ‘실크로드의 도시들’, 2부 ‘실크로드의 삶과 문화’, 3부 ‘둔황과 왕오천축국전’, 4부 ‘길은 동쪽으로 이어진다’로 최근 중국 실크로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 위주로 꾸며집니다.

이번 전시는 초원의 길, 오아시스길, 바닷길 등 실크로드의 3대 간선도로 가운데 중앙아시아 일대 여러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루트를 중심으로 8세기 혜초의 흔적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온라인에서 만나는 ‘디지털 혜초’(http://digitalhyecho.culturecontent.com)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문화원형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것으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연구팀이 혜초가 갔던 길을 네 차례나 답사해 왕오천축국전을 디지털화했습니다. 왕오천축국전 시나리오와 이미지 자료를 통해 혜초가 지났던 길을 둘러 볼 수 있으며 천축·서역 문화관들의 모습을 3D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왕오천축국전 플래시, 2D 모델, 사진, 에피소드 등의 제작물을 제공하고 있어 마치 영화를 보듯 혜초의 천축국 기행을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 참고사이트·문헌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문화체육관광부 (
http://www.mcst.go.kr)
     한문화재 한지킴이 커뮤니티 (
http://jikimi.cha.go.kr)
     동아닷컴 (
http://news.donga.com/3/all/20101210/33198001/1)
     네이버캐스트-교육·사상 (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koreanhistory/2208)

 

>국가지식포털

출처 :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글쓴이 : 한국의재발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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