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공간, 여백
그림에 있어서 여백이란 화가가 그리지 않고 일부러 남겨둔 부분이다. 그림이란 화면에 무엇인가를 그려서 표현하는 것인데 왜 그리지 않은 부분을 남겨둘까? 서양 유화의 경우 화면을 빈틈없이 채운다. 심지어 엑스선 투사를 통해 보면 현재의 빈 공간(사실 유화에는 빈 공간도 물감으로 꽉 차 있다) 속에 화가가 초고에서 그렸던 다른 인물이나 소재가 드러나기도 한다. 유화의 경우 이처럼 여백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된 공간이다. 그런데 동양화에서는 왜 여백을 중요시하고 화면에 그리지 않은 곳을 많이 남겨두는가? 이 문제는 노장철학, 불교철학 등 심오한 정신적 깨달음과도 관련이 있으나, 단순히 그림에 국한시켜 말해본다면 화가가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유로워진 깨달음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는 화면을 다양한 소재-심지어는 구름과 공간까지-를 100% 묘사해야 하는 의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이다. 그럼으로써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그 해방감을 같이 맛보게 하는 것이다. 여백은 자유를 갈망하는 예술의 근본요구와 잘 부합한다. 화가가 화면의 모든 부분을 100% 채워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될 때, 마침내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있으며, 이때 진정한 예술이 성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화가가 그린 작품에는 빈 여백 속에 채워진 형상이 자유롭고 생명감 넘치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백이란 이처럼 자유를 얻은 새가 조롱에서 벗어나듯이, 그림 속의 조롱을 없앤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 이념미를 담다
이런 그림 속의 여백을 가장 뛰어나게 구현한 위대한 화가가 중국 원元나라 때 예찬(倪瓚, 1301~1374)이다. 그는 화면의 대부분을 빈 공간으로 두고 나무 몇 그루와 텅 빈 정자, 그리고 넓은 강, 강 건너 나지막한 산을 통해 그 이전 누구도 표현해내지 못한 강력한 정신적 자유의 경지를 표현해냈다. 예찬의 이런 여백은 이후 동양화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추종된 하나의 정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예찬의 이런 여백 구도가 전해져 특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일파에 의해 많이 구사되었다. 김정희는 예찬의 회화정신을 중국사람보다 더 철저하게 이해하고 이념적으로 더욱 순수하게 순화시켰다.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는 바로 이런 적막한 이념의 공간을 잘 보여준다.
하얀 종이 위에 이지러진 조그만 오두막 집 하나, 오두막을 둘러싼 소나무 한 그루와 다른 나무 세 그루, 그리고 마른 붓질로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수평으로 그은 선 몇 개가 이 작품의 전부이다. 이 단순한 작품은 김정희가 약 10년에 걸친 제주도 유배생활의 적막함과 고뇌, 그리고 그 속에서 갈고 닦은 처절한 정신력과 예술의 경지를, 아끼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 속에는 예찬의 그림보다 더 엄격하고 순수화된 이념미가 텅 빈 여백 속에 충만해 있다.
좀 더 예찬에 가까운 여백의 미는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 1808~1892)이 그린 <방완당산수도倣阮堂山水圖>에 잘 드러나 있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사실 구도상으로 예찬과 많이 멀어졌으나 허련의 그림은 소위 예찬식 구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허련 그림의 구도는 근경의 작은 집, 나무 몇 그루, 아무 것도 없는 빈 강, 강 건너 나지막한 산으로 이루어진 것이 예찬식 구도의 전형이다. 그러나 허련은 ‘예찬을 모방했다(방예찬)’라는 화제 대신에 존경하는 스승 ‘김정희를 모방했다(방완당)’라고 화면에 명기하였다. 비록 먼 원조는 중국 예찬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들에 의해 완전히 토착화 된 이념미의 공간, 이념의 여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여백
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들에 의해 중국 회화사의 위대한 전통 속 여백의 미가 우리나라에 수용되고 철학적으로 승화되었음을 앞에서 보았다. 그런데 우리 옛 그림 속의 여백에는 적막한 이념의 공간과 여백보다는 살아 숨 쉬는 현실의 공간으로서의 여백이 더 보편적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흔히 자연스러운, 야성적인, 비대칭적인 것에 있다고 하는데, 옛 그림 속 여백도 이런 면모가 강하다. 우리나라 화가 중 한국적 여백의 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경)이다. 김홍도는 21세기 현재까지도 과거 우리 화가들 중 가장 한국적이고 친근한 존재이다. 그리고 김홍도의 작품에서 가장 친근한 여백-살아 숨 쉬는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여백-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원 김홍도의 회화에 다양하게 표현된 여백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추사 김정희가 표현한 이념적 여백이 엄숙한 정신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김홍도의 여백은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에 친근하게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유래한 여백이다. 김홍도가 52세 때인 1796년에 그린 소위 <병진년화첩> 중 <기우도강도騎牛渡江圖>에는 당시 한국의 산천과 풍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이 불은 하천에는 나무다리가 놓여있고, 그 위로 지팡이를 짚은 선비, 땔나무를 진 나무꾼들이 지나간다. 한편 목동들은 소 등에 타고 깊지 않은 강물을 그대로 걸어서 건너간다.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서 있고, 경치 좋은 모퉁이에는 기와를 인 누각이 보인다. 멀리 산과 들은 연무 속에 아스라히 잠겨있다. 도시화와 공업화로 파괴되기 이전 조선시대의 평화로운 시골 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역시 같은 화첩 중 다른 한 폭인 <백로횡답도白鷺橫畓圖>는 근래까지도 시골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을 보여준다. 모내기를 하여 파릇파릇 벼가 익어가는 들녘, 흰 해오라기가 느릿느릿 먹이를 잡고, 두 마리는 연무가 가득한 아스라한 하늘 저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아무 붓질도 하지 않은 위쪽 공간은 그대로 뿌연 연무가 가득 찬 무한한 공간으로 열린 여백이 되었다. 귀를 기울이면 아래쪽 개울에는 졸졸 물소리가 들리고, 개골개골 개구리 소리가 문득 해오라기에 놀라 멈춘 듯하다. <병진년화첩> 중 <영랑호>는 금강산 인근의 실재하는 경치를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김홍도는 실재 경치조차 주변의 경물을 과감히 생략하고 빈 여백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영랑호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화면 위에 부각시켰다.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경치들이 김홍도의 예술적 감각으로 취사선택을 거치고, 비본질적인 것은 연무 속에, 여백 속에 감추어짐으로써 주제가 더욱 생동감 있게 부각된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 중 여백의 아름다움이 극적이리만치 잘 표현된 작품이 국립박물관 소장 화조도 쌍폭이다. <고매명금도古梅鳴禽圖>는 물가 오래된 매화나무에서 뻗어 내린 가지 하나와 그 위에서 노래하는 새 몇 마리를 그린 단순한 작품이다. 이른 봄 흰 매화가 핀 가지 위에 몇 마리의 새들이 봄이 왔음을 즐거워하듯이 마주보며 노래하고 있다. 뒷배경은 완전한 여백이지만 아래쪽 수면을 자세히 보면 물풀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나뭇가지와 물풀, 그리고 농담을 달리한 마술적인 붓질 몇 개로,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백은 봄철 아지랑이가 가득찬 무한한 공간을 품게 되었다. <유음취금도柳陰聚禽圖>는 더욱 극적이다. 물가 수양버들 가지 하나가 빈 화면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위로 뻗어 있고, 다른 가지는 뒤틀려 아래쪽에 드리워져 있다. 그 가지 위에 참새같은 작은 새 여러 마리가 소란스럽게 지저귀며 깃들여 나들고 있다. 수양버들 가지 위에 참새들의 소란스러움을 보지 않은 한국인은 나이 어린 신세대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평범한 일상의 한 모습이 힘들이지 않은 붓질 몇 개로 무한한 공간의 여백 속에 마술적으로 포착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생활하는 한국인은, 비 오고, 바람 불고, 아지랑이 끼고, 안개 자욱한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여백을 단원 김홍도라는 천재를 통해 표현해 내었다. 이런 일상적인, 살아 숨 쉬는 여백의 공간은 중국이나 일본, 기타 다른 나라 그림에서는 쉽게 맛보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글·사진·진준현 서울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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